새해 '완전한 경제 회복'의 염원과 달리 더욱 복합적인 리스크로 한국경제호의 가시밭길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 심화와 내수 침체, 저출산·고령화 가속화, 유가·물가·고용 불안 요인까지 대내외 충격파로 인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한꺼번에 덮치는 위기)' 우려가 불확실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더욱 복잡 미묘해지는 리스크 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뉴스토마토>가 국책연구원장들의 통찰력 있는 진단과 고견을 들어보는 신년인터뷰 ‘국책연구원장에게 듣는다’ ④탄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두 번째 순서로 고용, 노동, 사회정책 분야의 국가정책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의 제언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김유진 기자]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노동계와 경영계가 생산 현장에서 직면하는 여러가지 애로점을 연구의 형태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정리·정제해 의제로 삼고 소통하는 방법이 노동개혁에 기여할 바가 크다는 판단입니다.
그러면서 양대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 등과의 공동연구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노총의 업종별 위원장들과 경총이 추천하는 연구자가 참여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는 청사진도 제시했습니다.
허재준 노동연구원장은 "가시적 조처를 취해서 그것을 교두보로 더 포괄적인 노동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싶다"며 "연구원의 연구자들이 집단지성을 발휘해 고용·노사관계 이해당사자들의 조정에 기여하는 측면에 대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허재준 원장은 "한국의 현행 노동규범은 현재 국민이 감시역할을 하면서 적절한 압력을 여론의 형태로 행사해 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과거 유산 위에 서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모두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조차도 막막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시대가 요구하는 일을 지금 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짐을 넘겨주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컨대 국가 차원에서는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 차원에서는 수명연장에 따른 노후 대비를 위해 주된 일자리에서 일하는 기간이 늘어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기업의 인사관리방식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4일 <뉴스토마토>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생산 현장에서 직면하는 여러가지 애로점을 연구의 형태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신년 인터뷰하는 허재준 원장. (사진=한국노동연구원)
지난 2016년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률이 도입된 바 있지만 산업현장에서 정년 보장이 쉽지 않은 문제도 지목했습니다.
허 원장은 "민간 기업들은 여전히 명예퇴직 등을 활용해 여전히 50대 초중반에 기존 직원을 내보내고 젊은 직원을 충원하고 있다"며 "또한 근속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는 임금체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연령자의 생산성이 과거보다 크게 증가하지 않는 한 고연봉을 보장하며 정년을 연장시켜줄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주된 일자리에서 가능한 한 오래 일하는 방안'을 목표로 장기적으로는 65세 정년이 가능한 제도와 관행을 확보해 나가는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기업이 지속가능하도록 기존 취업 규칙과 단체협약을 고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허재준 원장은 "대기업, 공공부문 노조일수록 이러한 접근에 대해서는 전혀 협의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사업주 입장에서는 단체협약을 해지하면서까지 근로자의 정년연장을 위한 노력을 할 유인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단체협약은 사업주가 해지할 수단이라도 있지만 고성장시대에 만들어진 취업규칙은 근로자 과반수 동의가 없는 한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도 없다"며 "현재 주어진 정년기간 동안 기존의 보상체계에서 보상받기를 원하는 경향이 크고 정년연장 대신 기존의 보상스케일을 합리적으로 하향하려는 개별 근로자도 많지 않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은 제도개선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며 "정치적 타결책을 모색해야 할 입법부는 이런 문제는 표에 전혀 도움 안되는 골치아픈 문제로 여기고 회피한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는 "이런 이유로 좀 더 오래 일하는 제도와 관행을 만들려는 시도는 함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것이 우리의 노동 현실"이라며 "방법은 국민들이 이러한 현실을 알고 이해관계자들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직장이 생계 수단이던 시절과 달리 자아실현의 장소로 변한 만큼, 직장 내 갈등을 조절할 때 다각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밝혔습니다.
허재준 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안전장치 혹은 분란 유발 장치를 구분하는데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어떻게 상호존중하는 직장문화를 정착시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조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장문화에서 상호간에 훨씬 많은 배려가 필요한 시대에 접어들었고 그에 맞춰 상호 존중하는 직장생활을 하는 방법을 익히는 계기로 받아들이면 근로환경이 진일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직장생할을 하는 근로자나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조언했습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은 4일 <뉴스토마토>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노동계와 경영계가 생산 현장에서 직면하는 여러가지 애로점을 연구의 형태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장. (사진=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프로필
△1961년 광주 출생 △서울대 무역학과 경제학 학사 △서울대 대학원 국제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파리 10대학 경제학 박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노동시장연구본부장, 사회정책본부장 외 △한국EU학회 학회장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심사위원회 위원 △한국사회보장학회 이사 사회보장위원회 위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세종=김유진 기자 y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