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고 하면 놀랄 분이 많으실 겁니다. 진짜로 담배 태웠다는 얘긴 아니고요. 1987년 첫 편 출시 후 꾸준히 사랑받는 탐정 게임 '진구지 사부로' 시리즈 명 대사를 적어봤습니다.
이 게임은 '하드보일드 어드벤처 게임'이지만, '비주얼 노블'로도 불립니다. 이유를 말씀 드리자면, 일단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이 전혀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배경과 인물 그림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음성 없이 대사가 출력될 뿐이죠.
게다가 장소 이동과 말을 거는 방식도 왼쪽에 세로로 나열된 아이콘을 반복해 누르는 식이어서 불편하죠. 필요한 정보를 얻을 때 까지 재차 질문 버튼을 누르거나, 본 걸 또 봐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실시간 액션 게임 위주로 즐긴 분은 진구지 식 게임 진행을 답답해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콘에 '필요한 만큼 눌렀다'는 걸 알려주는 표시가 없어서 일단 그냥 계속 눌러봐야 합니다. 제가 지금 즐기는 아크시스템웍스 작품 '탐정 진구지 사부로: 프리즘 오브 아이즈'를 구경하다 보면, '요즘 세상에 이렇게 답답한 걸 왜 하나' 싶을 겁니다.
그래도 이 시리즈가 명맥을 잇는 이유는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로 대표되는, 새벽 도시 골목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사의 매력 때문입니다.
아크시스템웍스의 '탐정 진구지 사부로: 프리즘 오브 아이즈' 게임 화면. (사진=닌텐도)
이 대사는 진구지가 충분한 단서를 모았지만, 뾰족한 해법을 못 찾을 때 누르면 출력됩니다. 담배를 입에 물고 고민하다 보면, 앞으로 어디서 실마리를 찾을 지 떠올리게 됩니다. 전개 방식이 분위기에 한 몫 하기 때문에 돋보이는 대사죠. 그건 고독입니다. 인물 한 명, 사물 하나에서 의미를 찾는 일은 상식을 벗어나야 하기에 외롭습니다. 버튼 하나하나를 누르며 한발한발 추리하다 보면, 진구지의 고독은 어느새 나의 것이 되어갑니다.
진구지의 대사는 '방백' 형식을 따릅니다. 다른 인물에겐 안 들린다는 가정으로 자기 생각을 화면 아래 출력하는 식이죠.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프랜시스 언더우드 대통령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시청자에게 말을 걸었는데요. 진구지는 우릴 마주보지 않지만, 그의 시선으로 펼쳐진 화면 아래에 그의 생각과 행동이 하나하나 드러납니다. 예를 들면 “나는 문을 열었다", "어쩌면~~겠지“라는 식으로 그의 모든 생각이 가감없이 대사로 출력됩니다. 물론 누구에게 무얼 물을 지, 어디로 갈 지에 대한 게이머의 선택이 진구지의 방백을 이끌어내죠.
방백의 매력은 완성도 높은 이야기가 만듭니다. 주인공 진구지는 하드보일드 탐정답게, 냉혹한 사건을 마주하며 자기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갑니다. 상관 없어 보이던 실마리들이 하나의 진상을 완성하는 순간, 이야기는 그간의 여정을 위로하듯 농도 깊은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리고 진구지는 담백한 어조로 다음 사건을 맞이하며, 담배에 불을 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