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 맞춰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로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러시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1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지주사
삼성물산(028260)은 지난달 31일 보유 중인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공시했습니다. 자사주 소각은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행보로 삼성물산이 이번에 나선 방법은 두 가지인데요. 자사주를 이익잉여금으로 소각하는 '이익소각'과 자본금을 감소시키는 '감자소각'입니다.
삼성물산은 보유 중인 자사주 중 보통주 188만8889주, 우선주 15만9835주를 감자한다고 밝혔습니다. 감자방법은 자기주식(자사주) 소각으로 해당 보통주와 우선주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당시 취득한 자사주입니다. 보통주는 보유 자사주 2342만2688주(13.2%) 중 일부를, 우선주의 경우 15만9835주(9.8%) 전량을 소각하는 것입니다. 자본금을 감소시키는 감자소각입니다.
이어 이익잉여금으로 하는 591만8674주 자사주 소각(이익소각)도 진행됩니다. 소각 예정금액은 약 7677억원입니다. 감자소각과 이익소각을 모두 더해 보통주 780만7563주가 사라지게 됩니다. 보통주, 우선주를 더할 경우 시가로 1조원이 넘는 자사주를 태우는 것입니다.
이번 자사주 소각 결정은 지난해 2월 공시한 2023~2025년 주주환원정책에 따른 것으로, 남은 자사주는 2025년과 2026년에 각각 780만7563주(보통주)씩 추가로 소각할 예정입니다. 현재 보유 중인 우선주와 보통주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는 겁니다. 당시 5년에 걸쳐 분할해 소각하기로 결정했지만 일정을 앞당겼습니다. 최근 금융위가 추진하는 밸류업 정책 기조에 맞춘 행보로 풀이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삼성물산 외에도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주 소각 대열에 속속 동참하며 정부 정책에 발을 맞추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보통주 491만9974주 소각을 결정했습니다. 현금 및 현물배당 대신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자사주를 태우는 겁니다. 장부가 기준 7936억원 규모입니다.
금융지주사들도 동참했습니다.
KB금융(105560)은 이달 8일부터 오는 8월7일까지 32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신한지주(055550)도 지난해 자사주 4859억원가량을 매입·소각했고 올 1분기 중엔 1500억원을 추가 소각할 계획입니다.
하나금융지주(086790)는 오는 7일부터 8월7일까지 3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소각에 나섭니다.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20% 뒷걸음질한
우리금융지주(316140) 역시 연내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한 지분 1.24%(1380억원)을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식이 사라지는 만큼 주당 가치는 상승합니다. 주주들로서는 세금이나 비용 부담 없이 주가가 오르기 때문에 이득입니다. 자사주 매입과 소각으로 자본을 줄이면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도 상승합니다. 이에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결정한 대기업, 금융사들의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는 등 강한 호재로 작용 중입니다.
다만 실질적인 수익성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하는 것은 밸류에이션 세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히 최근 업황이 하락 사이클에 들어선 금융업의 주가가 밸류업 정책과 자사주 소각 이슈로 뛰는 것은 기대감뿐이라는 시각입니다.
대기업을 필두로 상장사들 사이에 자사주 매입·소각 바람이 불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주주가치 제고는 '소각'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기업이 소각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며 "자사주 매입 소식은 긍정적이지만 결국 소각해야 주식 수가 감소해 EPS(주당순이익)가 올라가기 때문에 매입 자체보단 소각에 초점을 둬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