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게임사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한국 게임 게시판을 뒤집어놨습니다. 코에이 테크모 산하 '팀 닌자'에서 액션 게임 '라이즈 오브 더 로닌' 제작 총괄을 맡은 야스다 후미히코 디렉터가 개발 후일담 영상에서 한 말인데요.
야스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 요시다 쇼인에 대해 "일본에서는 소크라테스에 필적하는 인물이라 생각한다"며 "그의 삶의 방식이나 남긴 말을 '로닌' 속에서 그려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반발이 일자, 유통사 소니인터랙티브는 로닌의 한국 미출시를 결정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잊을 일일까요? 분하지만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요시다 쇼인은 일본인에게 구국을 위한 근대화의 선각자로 각인돼 있기 때문입니다.
1942년 개교한 쇼카손주쿠. 아마구치현에 있다. (사진=일본 정부 관광국 웹사이트)
에도 막부(도쿄에 세운 정부) 말기 사상가·사무라이인 요시다 쇼인(1830~1859)은 19세기 중반 메이지 유신을 이끈 무사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인물로, 생전 조선을 무력 정복하자는 정한론 등을 펼쳐 일본 우익 사상의 뿌리가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기까지가 게임계 보도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평가입니다.
그럼 왜 일본의 거대 게임사 주요 개발자가 그의 사상을 게임에 녹여내고,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어할까요. 저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육사 출신 김세진 작가가 쓴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의 학생들'을 구매해 그의 생애를 살펴봤습니다.
그가 살던 에도 막부 시기를 보면, 서양에게 당한 설욕을 조선 정복으로 해내자는 생각은 쇼인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주창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쇼인의 어린 시절, 서구 열강은 식민지를 넓혀갔고, 청나라는 아편전쟁 패전(1840년)으로 저물어갔습니다.
일본의 앞날을 걱정한 쇼인은 20대 초반부터 1만3000리에 걸쳐 일본 각지 학자들을 만나 견문을 넓혔습니다. 24살 되던 해 미국 페리 함대의 위협(1853년)을 목도하자, 서양 함선 한 척에도 맞서지 못하는 국력을 한탄했습니다. 그는 미국 문물을 익혀 돌아오기 위해 처벌을 각오하고 페리 제독에게 찾아가 자신을 미국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가 거절 당하기도 했지요.
이 일로 감옥에 머무는 동안, 쇼인은 그 유명한 '유수록'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미국으로 가려던 목적과 배경,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의 근본 주장을 적었습니다.
"군함과 포대를 서둘러 갖추고 즉시 홋카이도를 개척하고,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조선을 정벌해 원래 일본의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 북쪽으로는 만주를 얻고 남쪽으로는 대만과 필리핀제도를 확보해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 ··· 무역에서 러시아와 미국에게 입은 손해는 조선과 만주의 토지로 보상받아야 한다."('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 일본 근현대 정신의 뿌리, 요시다 쇼인과 쇼카손주쿠의 학생들', 김세진, 2018년)
작은아버지가 세운 학교 '쇼카손주쿠'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요시다는 한 서신에서 독도(다케시마)를 개척해 해외 사변에 대응하거나 조선과 만주 진출의 거점으로 써야 한다는 주장도 폈습니다.
쇼인은 무능한 에도 막부 타도의 일환으로 최고위직 '이이 나오스케'의 오른팔 마나베 아키카츠 암살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1859년 서른 살의 나이로 사형 당했습니다. 그의 절명시는 다음과 같이 전해집니다.
"내 몸은 비록 무사시의 들녘에서 썩더라도, 영원히 남겨지는 야마토 타마시(일본의 혼)!"(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이후 메이지 천황은 1863년 1월 쇼인의 죄를 사면했고, 쇼인의 제자인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 등이 그의 유해를 거둬 에도의 대부산 부근에 이장했습니다. 1882년에는 쇼인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도 세웠습니다. 도쿄 지하철 쇼인진자마에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끈 쇼카손주쿠 출신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1868년 도쿄 지요타구에 조슈신사를 세우고, 요시다 쇼인과 동문들의 희생을 기렸습니다.
조슈신사는 1879년 이름을 바꿉니다. 바로 그 유명한 야스쿠니 신사입니다. 그리고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쇼인의 고향 조슈번 출신임을 평생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쇼인은 평생 '지성'을 강조했는데, 그의 제자인 이토는 물론 아베의 좌우명도 지성이었습니다.
요시다 쇼인을 자랑스러워하며 자란 일본인은 세계 3대 플랫폼 중 두 개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 되는 구조인 겁니다.
이건 한국 정부나 한국인 게이머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일본 게임사가 한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국 콘솔 시장 규모도 작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 게임 이용자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게임 이용자 6292명 가운데 2022년 6월 이후 1년 동안 게임 분야는 모바일 게임이 84.6%로 가장 높았습니다. 다음이 PC(61%)이고, 콘솔 경험은 24.1%에 불과했습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일본이 한국 눈치를 볼 필요가 더 적어집니다. 문화체육관광부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2021년 주요 국가별 점유율은 미국 22%, 중국 20.4%, 일본 10.3% 순입니다. 한국은 7.6%에 불과합니다.
같은 해 국내 게임 시장의 세계 시장 비중을 보면, 콘솔 게임은 1.7%에 불과합니다. 최근 네오위즈의 'P의 거짓', 넥슨의 '데이브 더 다이버'가 선전했지만, 2023년 74조원으로 추산되는 콘솔 시장에서 일본에 미칠 영향력은 미미합니다.
정한론을 주창한 '선각자'를 숭상하는 일본 개발자는 지금도 곳곳에서 대작을 만들고 있겠지요. 그리고 이들이 만든 대작이 앞으로도 서구 게이머들을 감동시킬 겁니다.
저는 콘솔 게임 도전을 시작한 한국 게임사들도 꾸준히 패키지 시장에서 독보적인 IP를 만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침략으로 나라를 구하자는 사상가 찬양이 아닌, 동양평화에 대한 염원(도마 안중근의 염원이죠)이 반영된 서사와 연출이 세계를 감동시키기를 원합니다.
쇼인의 땅을 딛고 세워진 이토의 벽은 높습니다. 우리가 일본인의 사고 방식을 바꿀 순 없지만, 적어도 야스다 후미히코 같은 개발자도 배우고 싶어할 게임을 만드는 건 가능할 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