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동물원을 찾았습니다. 저녁 7시부터 내린다던 비가 이른 오후부터 시작됐습니다. 잠깐 비를 피하고자 주변에 있던 실내 동물원 '동양관'에 들어갔는데, 온갖 종류의 뱀, 악어들이 있더라고요. 전시코스를 따라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면서 보고 있는데, 아이가 "아나콘다다"라면서 좋아하더라고요. 뒷걸음질 치던 저와 다르게요.
서울대공원의 아나콘다. (사진=뉴스토마토)
유리창 안 속에 있는 아나콘다는 평범한 뱀이었습니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지, 자신의 공간 가운데 구석에서 몸을 가지런히 굽이진 채 있었습니다. 아나콘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 것은 새빨간 입속을 보이며 하나라도 더 잡아먹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거나, 유리창을 뚫고 나오려고 꼬리를 휘갈기려 하는 모습이었는데, 유리창 넘어있는 아나콘다의 모습은 평온 그 자체였습니다. 영화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스틸컷으로 본 영화 아나콘다의 모습이 강렬했던 까닭에 '아나콘다는 무섭다'는 것이 자연스레 학습됐던 거 같습니다. 그러니 뱀의 인사이더(인싸)를 본 것처럼 즐거웠던 아이와 온도 차가 났던 것이죠.
아나콘다는 실제 그물무늬비단뱀과 함께 세계에 가장 큰 뱀이지만, 무독성 뱀이라고 합니다. 영화 아나콘다에서 나오는 모습 가운데, 큰 뱀이었던 건 사실에 가깝지만 괴수로 묘사한 건 사실과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영화의 허구성에 사로잡혀 아나콘다를 실제와 다른 괴수 이미지로 수년간 인식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나콘다가 무독성 뱀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인지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아나콘다를 보거나 듣게 됐을 때 제 머릿속에는 여전히 영화 속 모습이 자리할 수 있습니다. 머리보다 수년간 몸의 기억이 더 강렬한 까닭이요,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을 버리기 쉽지 않은 보통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선입견이라고도 부릅니다. 선입견을 없애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아나콘다를 향해 달려간 아이처럼요.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놓은 선입견이 다소곳한 아나콘다의 모습을 흐리게만 합니다. 주변과 어떤 인연을 맺어왔는지 선입견에 대해 재음미를 해볼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