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한 달 넘게 국내 증시를 달궜던 '밸류업 프로그램' 뚜껑이 열렸습니다. 상장사가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수립해 공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요. 세제 지원 방안 등 구체적인 세부사항이 없고, 도입 일정도 길어질 전망이어서 시장 참여자들의 실망이 컸습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26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운영 방안을 공개했습니다. 금융위는 일본 도쿄거래소 사례를 참조해 국내 시장의 특성을 고려했으며, 프로그램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보완하고 참여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지원체계를 강화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방안은 상장사들에게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공시할 것을 요구했지만 강제성은 없습니다. 단, 기업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패널티를 부과하는 대신 인센티브를 내걸었습니다. 금융위와 한국거래소는 세제지원과 공시 우수법인 선정 등을 내세워 자율적 참여를 독려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일본을 벤치마크했는데도 일본의 것보다 기대에 못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본은 자율공시가 아닌 의무공시이고, 기업가치 제고가 미비한 상장사의 상장폐지도 거론하는 등 보완책이 있다며, 강제성이 없는 정책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습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26일 금융위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관련 브리핑에서 "세제지원 부분은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며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면 기업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진정으로 느껴야 하는 측면이 있어서 패널티는 넣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인센티브가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인센티브는 일본보다 훨씬 강하다"며 "상장폐폐지에 관해선 일본은 사실 상장 규제를 개정하는 것이라 기업가치 제고와는 상관이 없는데 잘못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본 닛케이255지수는 밸류업 정책을 앞세워 최근 3만9000선을 돌파, 34년 만에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습니다. 국내 증시도 이처럼 일본을 따라 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컸는데요. 정작 알맹이 없는 발표에 개장 초부터 대량의 실망 매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부터 하락 출발해 장중 1.42% 하락한 2629.78포인트까지 밀렸다가 낙폭을 만회하며 2647.08포인트에 마감했습니다. 코스피에서 가장 많이 하락한 업종은 보험으로 전 거래일보다 3.81% 빠졌습니다. 뒤를 이어 금융업(-3.33%), 유통업(-3.05%), 증권(-2.89%) 등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으로 상승했던 업종 모두 약세입니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발표 내용은)지금까지 금융당국이 언급한 내용을 종합한 정책"이라며 "세부적인 시점이 나온 것은 맞지만 당초 시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늦어졌는데, 상반기 안에 계획들을 시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거래소 지수 사업팀에게 밸류업 지수에 관한 진행 상황을 물어봤을 땐 조금 기다리라고 하더니 시점이 늦어져서 놀랐다"며 "기업들이 기업가치 제고 공시를 어떻게 하는지 모니터링한 후에 지수를 발표하겠단 취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용사로선 기다려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투자자들은 국내 기업들의 성격을 지목했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거버넌스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영국 대형 헤지펀드 헤르메스의 아시아(일본 제외)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 조나단 파인즈는 "아직도 금융당국은 지배주주가 소액주주를 악용하는 권한을 줄이지 않고서는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할 방법이 없다는 걸 이해 못하는 것 같다"며 "한국 기업 거버넌스 개혁을 위해선 한국의 자본시장법과 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면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