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자 공모 투자 자금도 크게 늘었습니다. IPO 주관을 맡은 증권사는 특판 환매조건부채권(RP), 발행어음 등으로 공모주 투자자 붙잡기에 나섰는데요. 실질 혜택이 크지 않아 투자자들에겐 별다른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IPO 활황…CMA 잔고 '역대 최대'
2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기준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77조7543억원으로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20일엔 75조5448억원으로 소폭 감소했습니다. CMA 계좌 수는 20일 기준 3861만개로 지난해 2월20일(3616만개)보다 245만개 늘어났습니다.
최근 CMA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IPO 시장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공모주 열풍이 불면서 청약에 참여하는 자금이 크게 증가한 결과입니다. 올해 코스닥 시장에 신규 상장한 6개 기업 중 상장일 종가 기준 '따따블'(공모가의 4배 상승)을 기록한 기업은 우진엔텍과 현대힘스 두 종목이었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상장 첫날 급등했습니다.
올해 첫 코스피 상장기업인 뷰티테크기업 에이피알은 조 단위 대어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희망 공모가 상단인 20만원을 훌쩍 넘겨 25만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는데요. 공모가 기준 예상 시가총액은 1조9000억원입니다.
뜨거운 열기 속에 대어급 후보가 등장하자 투자자들이 몰리며 일반 청약도 흥행했습니다. 상장 대표 주관사인 신한투자증권과 공동 주관사 하나증권에 몰린 청약 건수는 각각 62만94건, 16만8174건, 청약경쟁률은 1154.22대 1, 945.78대 1입니다. 청약증거금은 총 13조9100억원에 달했습니다.
이렇게 10조원이 넘는 금액이 모이는 경우는 앞으로도 늘어날 전망입니다. 대형 IPO가 예고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주관사들은 거액의 청약증거금을 자사에 묶어두기 위한 방안으로 특판 상품을 내놓고 있습니다.
공모주 투자자 이탈 방지…RP·발행어음 특판 출시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신한투자증권에서 에이피알 공모주에 청약한 고객 중 62만명 중 절반가량인 30만명은 최초 공모주 청약 고객입니다. 또 최초 공모 청약 고객 중 72.4%는 올해 처음으로 신한투자증권의 계좌를 개설한 고객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오직 에이피알 공모 청약을 위해 신한투자증권 계좌를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공모주 투자자들은 청약증거금으로 활용하는 종잣돈을 들고 다른 공모주 투자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는 특징이 있습니다. 공모 청약을 한 뒤 배정 받은 주식을 인수하는 자금을 제외한 나머지 청약증거금은 환불받는 즉시 인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증권사들은 이 규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이중 일부라도 자사 계좌에 묶어두기 위해 고금리 특판상품 출시에 나선 겁니다. 증권업계의 신규고객 유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공모주 청약 때문에라도 계좌를 만들고 투자자가 유입되는 것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공모주 청약 고객 중 신규 고객이거나 최근 6개월 간 주식 거래가 없었던 고객을 대상으로, 연 5%(세전)를 적용해주는 91일물 특판 RP 판매 행사를 진행 중입니다.
앞서 KB증권도 고금리 발행어음을 공모주 투자자를 대상으로 판매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KB증권은 지난해 9월11~27일 '공모주 슈퍼위크 2023' 이벤트를 벌였는데요. 신규 또는 휴면 고객을 대상으로 발행어음 6개월물을 연 4.5%(세전), 12개월물은 연 5.0%(세전) 금리로 판매했습니다. KB증권은 지난 2021년부터 공모주 투자자를 붙잡기 위해 종종 특판상품 이벤트를 벌이고 있습니다.
KB증권 관계자는 "(공모주 투자를 계기로)증권사를 이용하는 투자자가 많아졌지만 여전히 증권 상품에는 익숙하지 않은 투자자들이 많다"면서 "대형 IPO를 진행하면서 특판 발행어음을 함께 판매하면 안정성이 어느 정도 담보된 증권사 상품도 있다는 걸 소개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발행어음이 CMA RP형보다 금리가 더 높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판 행보 이어지나…실효성은 '글쎄'
에이피알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조단위 대어 HD현대마린솔루션이 IPO에 나설 예정입니다. 그 뒤를 따라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 LG CNS, SK에코플랜트, 케이뱅크 등 굵직한 공모주 후보가 상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춰 주관 업무를 맡는 증권사들도 RP, 발행어음 등 고금리 특판상품 판매에 나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이같은 노력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신한투자증권이 이번에 판매하는 500억원 한도의 특판 RP는 1인당 가입금액이 제한돼 있습니다. 청약환불금과 5000만원 중 적은 금액을 한도로 가입이 가능합니다. 즉 최대 한도가 5000만원입니다. 공모주 투자자들은 1주라도 더 주식을 배정받기 위해 억대 종잣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증거금을 넣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에게 5000만원은 너무 적은 금액입니다.
게다가 투자기간이 91일물, 즉 3개월입니다. 연 5% 고금리 상품이라고 해도 투자기간을 감안한 이자금액이 적습니다. 거기에서 세금도 떼고 나면 5000만원을 맡겨도 손에 남는 돈은 약 52만원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수익이라면 차라리 다른 공모주 투자에 나서는 것이 훨씬 더 이익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에이피알 같은 종목 1~2주만 배정받아도 며칠 새 RP 이자 넘는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입 규모도 제한돼 있고 이자금액도 크지 않은 특판상품으로 잠깐 거쳐가는 공모주 투자자들을 잡기는 버거워 보입니다. 공모주 투자자를 잡기 위해선 오히려 공모주의 열기가 한풀 꺾여야 할 전망입니다.
(위)신한투자증권, KB증권(사진=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