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정책 엇박자로 금융소비자들이 혼선을 빚고 있습니다. 금리 인하를 압박하거나 대환대출을 적극 추진하는 등 대출 수요를 자극해놓고 뒤늦게 가계부채 관리를 명분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인데요. 예측가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출금리 낮추면서 DSR 강화
서울시내 한 은행 대출 창구. (사진=뉴시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래 금리변동 위험을 반영한 '스트레스 DSR'이 지난 26일부터 시행됐습니다. 향후 금리 상승기에 늘어날 원리금 상환 부담까지 미리 반영해 변동금리 대출 이용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새 DSR 규제에 따라 산출되는 대출 한도가 기존 방식보다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은행권 신규 주담대(오피스텔 포함)에 우선 도입된 스트레스 DSR은 갈아타기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대출을 갈아탈 때 기존 대출보다 신규 대출의 한도가 감소하게 되는데요. 문제는 대환대출 인프라가 주담대로 확장된 지 한 달 만이라는 겁니다.
자본여력이 있는 차주들은 낮은 금리를 적용 받기 위해서 대출금 일부를 상환하고 대환할 수 있는 반면, 자본력이 없거나 조기 상환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으면 주담대를 갈아타기 어려워졌습니다. 사실상 대환대출 갈아타기에 제동이 걸린 상황입니다.
당국은 상반기 0.38%의 스트레스 금리 적용으로 차주별 주담대 대출한도가 변동형·혼합형·주기형 등의 대출유형에 따라 약 2~4% 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예컨대 소득 5000만원 차주가 만기 30년에 원리금분할상환 방식 주담대를 변동금리로 이용할 경우 대출한도는 기존 3억3000만원에서 3억1500만원으로 1500만원(4%) 줄어듭니다.
만일 해당 차주가 대출 한도까지 주담대를 받아 놓았다면 스트레스 금리 적용 이후에 DSR을 초과하는 1500만원을 상환해야 갈아타기가 가능합니다. 다만 '한도 증액 없는 자행(같은 은행) 내 대환'과 '기존 대출 재약정'에 한해서는 올해 말까지 유예됩니다.
가계부채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스트레스 DSR 등 DSR 규제가 시행되면 갈아타기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A씨는 3년 만기 원금일시상환 조건으로 DSR 90% 한도를 모두 채워 약 3억8000만원의 주담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요. 대출 만기를 앞두고 고민이 커졌습니다. A씨에게는 △기존 은행 재약정시 LTV에 의한 한도 감축으로 한도 3억1000만원(연 4.9%) △타행 대환시 DSR 40%룰을 적용, 한도 2억8000만원(연 4.1%)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타행 대환 시 금리는 줄어들지만 한도 역시 1억이나 줄게 되는데요. 한도에 더 민감한 A씨는 결국 당행 재약정을 선택했습니다. A씨는 "금리와 한도 중 어느 것을 선택할지 저울질해야 하는 와중에 스트레스 DSR이라는 새로운 기준도 고려해야 돼서 머리가 복잡하다"고 토로했습니다.
가계부채 관리 '갈지자 행보'
금융위원회. (사진=뉴시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은행권에 경쟁을 촉진하고 금리를 억눌렀다가 가계부채가 증가하면 다시 옥죄는 모습을 보여왔는데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금융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일례로 금융당국은 50년만기 주담대 상품을 두고 가계부채 증가 주범으로 지목했는데요. 앞서 50년만기 주담대는 정책 상품으로 먼저 등장한 후 은행이 정부 방침에 호응해 민간 상품으로 내놓은 상황이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은행권에 경쟁을 유도하겠다며 각종 비교 공시를 신설하는 등 대출 금리 인하를 압박하던 당국은 가계부채가 폭증하자 은행권을 향해 대출 관행을 점검하는 등 금리 인상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또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며 대출 규제를 완화한 후 금세 기조를 바꾸는 등 혼란을 야기하는 모습입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 얘기가 등장하고 있는 시점에 스트레스 DSR 도입은 금융소비자, 금융기관 보호 목적보다는 그나마 가계부채 총량 줄이기 역할이 있겠지만, 그마저도 DSR 산정 예외인 각종 특례대출이 난립하고 있어 가계부채 감축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경쟁촉진 방안과 건전성 관리는 별개의 정책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권흥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수준이 이렇게 높은 상황에서 경쟁 촉진을 위해 건전성을 희생할 수는 없다"며 "기본적으로 가계부채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하는 게 기본 방향이고 경쟁촉진은 그 아래에서 세부적으로 해야할 사항"이라고 말했습니다.
은행권은 관련해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주담대 갈아타기는 제로섬(zero-sum)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신규 부채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개별 은행의 입장에서는 신규로 잡히기 때문에 가계부채 등 관리 차원에서 부담이 있다"며 "관련해서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올지 모르겠다"고 귀띔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