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한결 기자]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세제혜택 등 구체적인 방안이 빠진 것에 실망감을 나타냈습니다. 상장사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독려하겠다고 밝혔지만 기획재정부는 세제혜택 방안을 두고 지지부진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복현 "금투세·배당세·거래세 단편적 논의 안돼"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연구기관장 간담회 직후 금융위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전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자본시장 밸류업 정책을 3년에 걸쳐 꾸준히 추진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아직 윤곽조차 나오지 않은 참여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을 언급한 겁니다.
이 원장은 "단순히 금융투자세, 배당소득세, 거래세를 단편적으로 다루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연금 등에 준할 만큼 국민과 가계의 자산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자본시장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조금 더 깊게 고민해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원장은 상속세 등 기업을 위한 세제지원 외에도 개인 주주를 위한 고민도 주문했습니다. 그는 "기업의 경영권 방어나 승계에 필요한 효율적이고 균형감 있는 장치가 마련되는 걸 전제로,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내지는 상법상 의무, 자본시장법의 장치를 두고 균형감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등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정부 내에서 논의가 있을 때 개인적인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패널티가 없는 것을 염두한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이 원장은 "패널티는 금융투자회사, 상장사 등 오랜 기간 별다른 성장을 못하거나 재무제표가 나쁘거나 심한 경우 이런 기업이 계속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게 맞는지, 이런 차원의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기재부 빠진 브리핑…"내부검토 완료시 발표"
이 원장의 발언은 금융위가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실망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난주 초 시장 참여자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됐지만 맹탕이란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세제혜택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비판을 받았습니다. 시장에서 기대했던 △배당소득세율 인하 △배당소득 분리과세 △자사주 소각시 법인세 감면 등에 대한 언급이 없어 기업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긴 역부족이란 지적입니다.
지난달 26일 금융위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에 대해 브리핑할 당시 기재부가 참석하지 않은 점도 세제혜택 방안 마련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을 방증했습니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은)금융위가 끌고 가고 세제지원 부분은 기재부와 같이 하는 것"이라며 "(기재부)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완료되면 당연히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증권사도 지적…본격 논의 총선 후
주요 증권사들은 밸류업 정책 발표 후 세제지원 등 인센티브에 초점을 맞춘 리포트를 냈습니다. 노동길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강제안보다 인센티브 제공으로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라며 "인센티브는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한 세제지원을 핵심으로 하는데, 예컨대 자사주 소각시 비용 발생분을 손금산입(세법상 비용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밸류업 정책에 대한 실망으로 증시가 약세를 보인 것도 구체적인 세제혜택 방안이 빠져있던 영향으로 분석했습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기대했던 세제혜택 등 기업들로 하여금 실행의지를 높일 만한 구체적인 지원안은 후속대책으로 미뤄놓았다는 점이 주가 약세를 유발했다"고 분석했습니다. 26일 코스피는 0.77% 하락 마감했습니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시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를 낮추는 방안과, 전기 대비 배당 증가분에 대한 세액공제, 고배당 기업 투자자에 대한 배당소득세 저율분리과세, 배당소득세율 한시적 인하 등의 인센티브가 거론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정부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가치 제고를 위해 세제지원을 검토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세제지원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오는 5월 밸류업 지원방안 2차세미나 이후가 될 예정입니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는 7월을 최종 시한으로 정하고 그 전까지 자사주 소각, 배당 등에 관한 지원책 나올 것으로 전망됩니다. 즉, 일정상 4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뒤부터 본격 논의한다는 것인데요. 당사자인 기재부는 아직 말을 아끼는 모습입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상반기 중 이른 시일 내 추가 세미나 등을 통해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세제지원 방안은 준비되는 것부터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선 총선 후 세제지원안이 논의되는데 세수 부족으로 고민이 많은 기재부가 과연 지금의 스탠스를 유지할지 의문이란 의견도 나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사진=뉴시스)
김한결 기자 alway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