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열린 스물두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대책'을 위한 5대 정책 분야별 세부 방안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주호주 대사(전 국방부 장관)가 일시 귀국했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 대사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소환조사에 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몸통은 윤석열 대통령"이라며 꼬리 자르기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사건은 핵심은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 의혹과 진실 은폐 여부입니다. 특히 윤 대통령이 왜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피의자를 주호주 대사로 임명해 국외로 내보냈느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결국 의혹의 정점에 있는 윤 대통령의 수사 외압 실체를 감추기 위한 행위가 아닌지 의구심이 커지는 모양새입니다.
이종섭, 수사 결과 경찰 이첩 보류…'혐의자 특정 마라' 지시
2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7월20일 해병대 1사단 소속 채모 상병이 경북 예천에서 폭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숨졌는데, 이 사건을 조사하던 해병대 수사단원에게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문제는 공론화됐습니다. 당시 수사책임자로서 외압 의혹을 고발한 건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었습니다.
박 대령은 7월30일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과 함께 국방부로 들어가 수해 복구 중 숨진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 대사에게 보고했습니다. 당시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의 군 간부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대사가 '수사가 잘 됐다'며 이를 재가했다는 게 박 대령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박 대령이 수사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하기로 한 날인 7월31일, 갑자기 김 사령관으로부터 브리핑을 취소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이 지시를 내리기 직전 이 대사는 대통령실로 발신자가 찍힌 유선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박 대령은 김 사령관에게 브리핑 취소 이유를 물었고 '윤 대통령의 격노 때문'이란 답변을 들었다고 합니다. VIP(대통령)가 아침 회의에서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격노해서 이 대사에게 전화해 '이런 일로 사단장까지 처벌하면 대한민국에서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는 취지로 질책했다는 설명을 김 사령관이 했다는 겁니다. 물론 김 사령관과 이 대사, 대통령실은 박 대령의 주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박 대령은 윤 대통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부터 수사 외압이 시작됐다고 주장합니다. 이후 이 대사는 정종범 당시 해병대 부사령관을 집무실로 불러 경찰 이첩 서류에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 것과 사건에 대한 언론 브리핑은 경찰이 수사를 모두 마친 뒤 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 대령은 '사단장 혐의 삭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8월2일 '장관 결재본' 그대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했습니다. 그러자 국방부 조사본부는 같은 날 저녁 경찰청에서 사건을 회수해 24일 사건을 재이첩했습니다. 혐의자 목록에서 임 사단장 등은 빠지고 대대장 2명의 혐의만 적시된 서류가 경찰로 넘어갔습니다.
주호주대사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주호주대사 임명 후 '도피 논란'…대통령실 '고의 방해'
민주당은 9월5일 이 대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고 윤 대통령은 10월7일 이 대사를 국방부 장관에서 교체했습니다. 공수처는 올해 1월 이 대사에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 최근까지 연장해왔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이 대사를 신임 주호주대사로 임명했습니다. 이후 이 대사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는 상황에서 같은 달 10일 호주로 출국했습니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을 향해 '도망 출국'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면서 결국 이 대사는 오는 25일 열리는 방산 협력 공관장 회의를 명분 삼아 이날 일시 귀국했습니다.
앞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가 시작될 때부터 대통령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는 정황은 계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21일 해병대 수사단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요청에 따라 수사계획서를 제출했는데, 이어 같은 달 30일 국가안보실은 해병대 수사단에 수사 결과보고서를 공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박 대령은 이를 거절했고, 대신 언론 브리핑 자료를 결과보고서 대신 넘겼습니다. 8월2일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에 자료를 넘기자 김 사령관에게 직접 연락해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이 대사와 대통령실이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윤 대통령이 이 대사를 호주로 도피시킨 것 자체가 대통령실로 향하는 수사에 대한 '고의 방해'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결국 이번 의혹의 정점엔 윤 대통령이 있다는 지적입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