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0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1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특별강연을 위해 연단에 올라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사의를 수용했지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당의 요구에 등 떠밀리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여권 내부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파국만은 막았지만, 포스트 총선 정국에서 이들의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총선 앞 서울·중도층 '흔들'…'수도권 위기론' 확산
20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당초 대통령실 내부에는 황상무 사퇴에 부정적 기류가 많았습니다. "당 압박에 의해 사퇴시키면 안 된다"는 강경론이 우세했었는데요. 황 수석 발언이 부적절했지만, 사퇴까지 이어질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낸 입장문에서 "특정 현안과 관련해 언론사 관계자를 상대로 어떤 강압 내지 압력도 행사해 본 적이 없고,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언론기관의 책임을 철저하게 존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국정철학"이라고 밝혔습니다. 황 수석에 대한 경질 요구를 우회적으로 거부한 것으로 읽혔습니다.
이종섭 주호주 대사 귀국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날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대사는 공수처의 소환 요청에 언제든 즉각 응할 것"이라며 '공수처 소환시 즉각 귀국' 방침을 재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두고 당정 갈등이 장기화되면 총선을 앞두고 양쪽 모두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어쩔 수 없이 '황 수석 사퇴', '이 대사 귀국'이란 여당의 요구를 윤 대통령이 우회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황 수석의 경우, 경질이 아닌 자진 사퇴 형식으로 한발 물러난 것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총선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정부여당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진 점이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배경이 됐습니다.
지난 15일 공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3월12~14일 조사, 표본오차 ±3.1%포인트, 전화조사원 인터뷰)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은 일주일 전에 비해 3%포인트 하락한 36%였습니다. 부정평가 응답도 3%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서울과 중도층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크게 하락하면서 수도권 위기론이 확산했습니다. 서울에서 43%에서 31%로, 지지율이 12%포인트 빠졌고, 중도층 지지율도 38%에서 24%로 일주일 새 14%포인트 줄었습니다.
정당 지지도에서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은 지난주와 같은 37%를 유지했지만, 서울에선 45%에서 30%로 15%포인트 줄었고, 중도층에선 32%에서 24%로 8%포인트 빠졌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아 피해 상황을 점검하기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뉴시스 사진)
이종섭 귀국 의사 밝히자…야 "즉시 해임·압송'
그러나 이른바 '윤-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이 대사가 귀국하기로 하긴 했지만 국민의힘 총선 출마자들이 바라는 이 대사의 사퇴 수순까지 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은 이 대사 조기 귀국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이 대사의 국내 압송과 수사, 사퇴'를 일제히 요구하며 파상공세를 폈습니다.
특히 이 대사가 국내로 돌아올 경우, '해병대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다시 상기시킬 수 있어서 대사직 사퇴로 이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총선 전까지 일단 양측이 충돌을 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총선 결과에 따라 2차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앞서 지난 1월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에게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하고 한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1차 윤·한 갈등이 표면화됐습니다. 1차 때는 갈등 사흘 만에 충남 서천 화재 현장에 동행한 한 위원장이 윤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며 마무리됐습니다.
'윤·한' 갈등이 파국으로 가는 것은 막았지만, 대통령실 내부에선 한 위원장에 대한 불만 기류가 읽힙니다. 윤 대통령에게 황 수석의 거취를 요구한 것만 해도 대통령의 인사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비례대표 공천에 대한 친윤(친윤석열)계 핵심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의 공개 비판에는 한 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만이 투영된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