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평범한 30대 주부 이한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 바람을 피우다 남편에게 걸려 한밤중 집에서 도망칩니다. 돈도 휴대폰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 나왔습니다. 갈 곳이 없어 길거리를 배회하다 산 아래 벤치에 이르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벤치에서 불편한 잠을 청하고 다음날, 일터인 국밥집으로 출근하지만 경찰인 남편이 미리 손을 써 잘리게 됩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내연남마저 한주를 모른 체합니다. 게다가 SNS에서 본의 아니게 댓글 테러까지 당하자 서럽고 분한 마음에 한주는 죽기로 결심합니다. 목을 맬 장소는 지난밤 잠을 청했던 벤치에서 바라본 산. 깊은 밤, 힘들게 산꼭대기까지 올라가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죽는 일마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그곳에서 술에 취한 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한주는 그 산의 미화원으로 취직하면서 180도 달라진 삶을 살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그 산의 미화원’은 바람 피우다 걸린 가정주부라는 흔한 얘기를 풀어갑니다. 하지만 불륜을 소재로 한 얘기들이 다소 어둡고 끈적거리는 데 비해 ‘그 산의 미화원’은 경쾌하고 가볍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쾌함과 가벼움은 무엇보다 인간과, 그 인간의 욕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나옵니다. 작가의 이전 작품들이 그렇듯 ‘그 산의 미화원’ 중심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성찰입니다.
‘그 산의 미화원’ 주인공의 삶은 풀과 나무와 오소리와 멧돼지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고 먹고 청소하고 사랑합니다. 욕망에 충실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나는 자연인이다’란 식의 얘기로 끝났을 겁니다. 작가는 자연의 일부이면서 그럼에도 끊임없이 특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한주의 모습을 통해 인간을 그립니다.
작가 장수정은 전작 ‘검은 숲의 사랑’에서 보여준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도 화려한 문장을 ‘그 산의 미화원’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혹시 작가가 자연을 묘사하고 싶어 일부러 주인공 ‘한주’를 그 산의 미화원으로 취직시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산과, 산에 사는 생명체에 대한 묘사가 압도적으로 다가옵니다.
작품 마지막, 작가는 이런 글을 통해 ‘그 산의 미화원’을 불륜 소재의 얘기에서 인간 그 자체가 추구하는 가치의 의미와 무게를 전하려 했다는 의도를 뿜어냅니다.
‘어쩐지 한주는 자신을 여기로 이끈 것이, 그동안 놀아난 모텔의 사내들도 아니고 악마를 용서할 수 없다는 남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술주정뱅이 대장도 아니며 다만 그토록 신비한 부엽토 향이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살아있던 것들이 죽고 또 죽어 쌓이며 된 부엽토, 그 죽음의 깊숙하고 단정한 향 말이다. 그 향을 떠올리자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 지며 이어, 어떤 결심이 섰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 권선징악과 윤리 도덕을 추구하는 다른 작품들과는 분명하게 차별성을 보이는 장수정 작가의 ‘그 산의 미화원’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