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최근
에스엠(041510)의 레전드 가수 보아가 SNS를 통해 은퇴를 암시하는 메시지를 남겼는데요. 문제는 은퇴 여부가 아닙니다. 왜 은퇴를 말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나 하는 것이죠. 주목할 건 보아만이 아닙니다. 최근 잇따른 소속 아티스트의 ‘탈 SM’ 행렬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SM엔터 매니지먼트 붕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좌)가수 보아 (우)SM엔터테인먼트. 사진=뉴시스
보아 은퇴 발언이 암시하는 것
지난 17일 SM엔터는 보아를 향한 악플러들에게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가수 보아와 관련한 악플러 및 ‘사이버렉카’(온라인 핫 이슈를 두고 ‘고속도로에서 사고 난 차량에 달려드는 렉카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신조어) 등에게 모욕죄 혐의로 법무법인을 통해 고소장을 접수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겁니다.
언뜻 보면 소속 아티스트 보호를 위한 SM엔터의 발빠른 대응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늦어도 너무 늦은 듯 보입니다. 데뷔 24년차 보아는 이미 활동 기간 내내 안티팬에게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하지만 SM엔터의 태도는 미온적이었습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SM엔터는 이상할 정도로 안티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가 눈에 띈다”며 “과거 H.O.T와 동방신기가 안티와 극성팬에게 시달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SM엔터엔 유독 극성 안티를 보유한 아티스트들이 많았다”면서 “그런데 가만히 떠올려 보면 SM엔터는 이런 안티조차 인기의 척도로 드러내는 수단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초창기 아이돌 산업을 주도했던 SM엔터의 내부 시스템과 시장 판단 및 트렌드 분석이 ‘악플이 무플보다 났다’는 인식을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그런 흐름이 오랜 시간 아티스트를 악플러로부터 보호하지 못했고, 결국엔 보아도 은퇴를 암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는 분석입니다.
(위로부터)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사진=더팩트뮤직어워드, 뉴시스
무너지는 매니지먼트 시스템
SM엔터를 떠나려는 이는 보아만이 아닙니다. 이미 SM엔터 황금기를 이끌었던 수많은 아티스트가 떠났습니다. 소속 아티스트 가운데 멤버 전체가 온전히 재계약을 일궈낸 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마의 7년’ 카테고리로 묶어보려 해도 다른 경쟁사 대비 SM엔터의 팀 붕괴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샤이니, 에프엑스 가운데 단 한 팀도 SM엔터에 온전히 남아있는 팀이 없습니다. 각각의 팀 멤버 절반 가량이 이미 SM엔터를 떠났습니다.
‘탈 SM’을 선언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1인 기획사 독립을 선택했는데요. 실제로 4대 엔터사 가운데 ‘탈 소속사’ 이후 1인 기획사를 설립해 독립한 비율이 SM엔터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도 특이점입니다.(본지 보도 2월7일 :
(마의 7년 해법)SM 탈퇴 후 1인 기획사 설립 '봇물')
이처럼 소속 아티스트의 소속사 이탈이 이어지는 이유. 업계 관계자들은 소속사에 대한 일종의 ‘불신’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 시절에는 안티조차 인기의 바로미터로 전환시켜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느낌이 강했다”면서 “솔직히 ‘그땐 그럴 수도 있었지’라 넘어갈 수 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 전 총괄 프로듀서를 몰아내고 이성수 탁영준 등 젊은 지휘부가 경영권을 손에 쥐었음에도 너무 안일하게 아티스트 관리를 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SM엔터 걸그룹 에스파 멤버인 카리나의 SNS 열애설 해명을 두고도 SM 매니지먼트 실종에 관한 문제 제기가 빗발친 바 있습니다.
SM엔터는 초기 K팝 시장을 주도한 1세대 기업입니다. 발라드가 주류를 이루던 국내 가요 시장을 아이돌 시장으로 변화시켜 K팝 산업화 밑거름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성장하는데 실질적 일꾼 역할을 한 것은 소속 아티스트들입니다. 안티팬에 대한 미온적 태도로 소속 아티스트를 보호하지 못한 점은 SM엔터 매니지먼트의 명백한 실패로 보입니다. 과거엔 SM엔터가 K팝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매니지먼트 시스템 자체가 붕괴된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보아 안티팬에 대한 고소장 접수 하나로 무너지고 있는 둑을 막긴 힘들어 보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