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개봉작을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는 곳곳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가 아닌 영화관은 하나둘 자취를 감춰 전국적으로 소멸 직전에 이른 상태입니다. 영화관 소멸, 단순히 ‘추억 속 극장이 사라졌다’로 치부할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화에 매몰된 한국영화계의 현주소와 그로 인한 각종 폐단이 ‘영화관 소멸’이라는 하나의 현상 안에 응축돼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영화계가 보내는 위기 신호, 영화관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최근 5년간 1000만을 넘어선 국내 개봉된 영화는 8편입니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범죄도시4’ 역시 7일 집계 누적 관객 수 871만명을 돌파하면서 곧 1000만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1000만 흥행에 기뻐하기엔 한국 영화에 드리운 구조적 어둠이 너무 깊습니다. 누구나 한 번씩은 들어봤을 스크린 독과점. 하지만 ‘이름값’에 비해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작년 기준 매달 135편의 영화가 새로 개봉했지만 정작 극장에 가면 극소수의 영화가 모든 스크린을 독점하다시피 합니다.
평균 70%이상의 상영점유율로 1000만 흥행에 성공한 '범죄도시2, 3' 그리고 지난 달 24일 개봉해 27일 상영점유율 82%를 기록한 바 있는 범죄도시4. 범죄도시4는 7일 집계까지 누적 관객 수 871만을 기록 중이다.
스크린점유율 VS 상영점유율
스크린점유율과 상영점유율은 다른 개념입니다
. 일반적으로
‘스크린 독과점
’을 거론할 땐 스크린점유율을 봐야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스크린점유율엔 멀티플렉스(
CJ CGV(079160),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꼼수
’가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
상영관이 1개뿐인 A극장에서 ‘파묘’와 ‘범죄도시4’ 두 편을 상영한다 가정해 봅니다. 상영관에선 하루 10번 영화를 상영할 수 있습니다. ‘파묘’는 하루 1번, ‘범죄도시4’가 하루 9번을 상영한다고 가정했을 때 두 영화 스크린점유율은 얼마일까요. 1대1입니다. 상영관 1개 스크린을 두 영화가 1번씩은 점유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상영점유율로 가면 두 영화의 비율은 1대9가 됩니다. 현실적인 수치가 나오는 것이죠.
영화계에선 이를 ‘퐁당퐁당’이라 부릅니다. 교차상영을 뜻하는 말인데 한 개 상영관에 두 개 이상의 영화를 배치한 형태를 일컫습니다. 돈 되는 상업영화를 메인 시간에 배치하고, 다양성 영화를 관객 없는 새벽이나 심야 시간에 배치합니다. ‘스크린독과점’ 논란이 불거질 때 면피용으로 내세우기 위함입니다.
결과적으로 스크린점유율은 큰 차이가 없게 되지만 상영점유율에선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모처럼 마음먹고 극장에 갔더니 “볼 영화가 없다”는 말은 그래서 나옵니다. 다양한 영화의 동시 상영이 장점인 멀티플렉스가 마치 단관극장처럼 주력 영화로만 모든 스크린의 모든 시간대를 채우는 겁니다.
영화계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멀티플렉스가 성수기 시장을 단 한 편의 영화로 획일화시켜 버리면 다른 영화들은 비수기 시장에서 더 치열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면서 “‘돈 되는 영화’와 ‘돈 안 되는 영화’로만 나뉘어 투자 배급이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한탄했습니다.
1000만 영화 흥행의 비밀
‘만들어진 1000만 영화’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뉴스토마토>는 2019년부터 올해까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8편(기생충, 어벤저스:엔드게임, 극한직업, 범죄도시2, 아바타:물의 길, 범죄도시3, 서울의 봄, 파묘)을 골라 영진위 통합전산망 기준 상영점유율을 조사해 봤습니다. 상영점유율은 해당 영화가 상영되는 기간 가운데 전국 스크린이 가장 많이 열렸던 날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통계를 내어보니 총 8편의 평균 상영점유율은 72.41%였습니다. 해당 날짜 국내 전체 보유 스크린에서 상영될 수 있는 모든 시간대에서 72% 비중으로 단 한 편의 영화만 상영됐다는 뜻입니다.
이 수치에서 1위는 2019년 4월24일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개봉 3일만에 무려 80%에 육박하는 79.30%의 상영점유율을 기록했습니다.
‘범죄도시’ 시리즈도 막강한 상영점유율을 나타냈는데요. 누적 관객 수 1269만명의 '범죄도시2'는 개봉 10일 만인 2022년 5월 28일 71.20%, 누적 관객 수 1068만명의 ‘범죄도시3’는 개봉 2일 만인 작년 6월 2일 69.00%였습니다. 지난 달 24일 개봉해 7일 집계까지 871만명을 동원한 ‘범죄도시4’는 개봉 3일차인 지난 달 27일 무려 82.00%의 압도적 수치를 보였습니다. ‘서울의 봄’과 ‘파묘’의 상영점유율도 각각 55.80%와 55.90%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국내 상영시장 97%를 점령한 멀티플렉스 3사가 평균 70%가 넘는 상영 기회를 단 한 편에게 몰아주고 있으니 다른 영화들이 설 자리가 없다”며 “제작 이후 상영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영화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습니다.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국내 개봉한 국내외 영화 전체 편수는 총 1621편입니다. 한 달 평균 135편이 개봉한 셈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한 달에 100편 넘는 새 영화가 개봉하는 현실을 아무도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예 개봉하지 못하는 영화도 많습니다. 상영관을 잡지 못해 창고에 쌓여있는 한국 영화만도 200편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