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의 대표 정비 사업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 곳곳에서 반발이 이어지며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주도로 정비 계획을 수립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인 만큼 과도한 공공성을 요구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의 허점을 이용한 투기 세력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신통기획 진행 상황, 문제점 등을 짚어보고 정비 사업 방향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주)
[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2021년 9월 후보지 공모를 시작한 신통기획은 공공에서 행정적인 부분을 지원해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이루겠다는 당초 목표와 달리 일부 지역에서는 철회 움직임이 나타나는 등 대책 보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신통기획을 추진 중인 곳은 124곳입니다. 재건축 사업지가 43곳, 재개발 사업지는 81곳입니다. 신속통합기획은 2021년에 도입돼 만 3년이 돼가지만 아직 착공에 들어간 곳은 없습니다. 신통기획은 재건축과 재개발의 추진 속도를 높이는 것이 핵심인데요. 정비계획 수립 단계에서 서울시가 직접 계획안을 제안하고 향후 사업시행계획까지 신속하게 인허가를 지원하는 제도로, 공공이 주도하는 '기획 방식'과 기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놓은 '자문방식'으로 나뉩니다.
우선 문제는 공공 개입 부분에서 사업 주체 간에 입장 차이입니다. 각 재건축 단지 내에서는 기부채납과 임대아파트 등을 두고 이견이 큰 상황이죠. 여의도 신통기획 1호 단지인 시범아파트는 서울시에서 용적률과 최고 층수의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단지 내 노인 요양시설인 '데이케어센터'를 짓는 문제로 신통기획 재건축 철회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앞서 강남 대치선경, 서초 신반포4차, 송파 오금현대는 신속통합기획으로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다 주민반대로 철회된 바 있습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대표는 "신통기획은 과도한 공공기여 때문에 얘기가 나오고 있다"면서 "서울시가 일일이 사업에 참여하려 하기보다 인허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기여에 대한 적절한 인센티브가 적용되지 않은 가운데 자문방식 같은 경우 그나마 민간 시행자가 주도가 돼 원하는 정비계획 안을 바탕으로 협상을 하지만, 대부분 재개발 방식에서는 주민대표가 없어 서울시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려간다는 단점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여의도 시범아파트 입주민들은 단지 내 노인 요양시설 건립 문제로 신통기획에 반대하고 있다. (사진=홍연 기자)
사업지 내 각기 다른 주민들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속도에 주안을 두다 보니 사업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동작구 사당15구역 주민들은 동작구청이 소유주 동의도 없이 신통기획 구역을 확정해 주거 자유와 재산권 등을 침해받았다며 시위에 나섰습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337-8 일대 주민들도 주민 동의율 30% 이상으로 후보지로 지정됐지만 뒤늦게 사업 반대 목소리가 나와 서대문구청에 신통기획 해제신청서를 접수했습니다. 이밖에 구로구 가리봉동 115번지, 동대문구 답십리동 471번지 일대에서도 사업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고금리 기조가 겹치면서 정비사업의 사업성도 악화한 것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행정적인 부분을 단축해도 소득수준이 다른 지역에 비해 부족하고 분담금에 대한 여력이 충분치 않은 곳들은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죠.
김태수 서울시의원은 "사업성이 좋은 곳은 차후에 일반분양 등을 통해 마이너스가 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지만 강북은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공사 비용 증가에 따라 커진 주민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용적률 완화라는 카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을 추진 중인 홍제동 ‘개미마을’ 일대 전경. (사진=서대문구)
투기 기승에 개선안 마련했지만…신규 추진지역 감소 전망
신통기획 재개발 사업구역에선 지분쪼개기, 갭투자 등 투기 세력 유입에 따른 우려도 커지고 있는데요. 이에 서울시가 신통기획 구역 내 '재개발 지분 쪼개기'를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권리산정기준일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소규모 주택 사업자도 발생했습니다. 일부는 기획 구역 지정 전에 토지 매입과 건축허가를 마쳤지만 건물을 짓고 사용승인을 받는 기간 동안 권리산정기준일을 넘겨 현금청산 대상이 된 거죠.
신통기획 피해자 대책위원회 회장인 최홍식 광나루종합건설 대표는 "현재 대책위에는 16개 건설사가 있는데, 피해 규모는 240세대에 1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습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신통기획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명히 지역에서 동의서를 받는 등의 움직임이 있다"면서 "준공 승인이 난 뒤 쪼개서 팔면 엄청난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선량한 피해자와 투기적인 목적을 가진 사업자를 구별하기 힘들고, 양쪽 다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권리산정기준일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부분이 있었는데 올해부터 자치구청장 후보지 추천일로 변경됐다"며 "원주민을 보호하는 대원칙에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서울시는 주민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민들의 재개발 의지가 강한 곳을 최우선으로 선정하는 개선안을 발표했는데요. 그간 낮은 동의율 요건으로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주민 간의 갈등과 투기 수요 진입 등 부작용이 곳곳에서 발생했죠.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후보지 선정에서 주민 찬성동의율이 50%를 넘는 구역의 가점을 높이고 반대동의율이 5~25%인 구역의 감점이 강화됩니다.
투기세력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재개발 후보지를 선정할 때 실태조사를 진행해 지분쪼개기, 갭투자 등 투기가 발생했거나 의심되는 구역은 후보지 선정에서 배제하는 등 강력한 투기 방지 대책도 병행합니다. 이에 앞으로 신통기획으로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 감소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