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준형 기자] 상장사 중 특히 코스닥 기업은 밸류업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가운데 지배구조(G)가 가장 취약합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주식시장 상승 동력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와 주주환원으로 확대해야 하지만, 코스닥 기업은 대주주 권리보호와 이익 집중으로 구조화됐다는 지적입니다.
코스닥, 지배구조 취약…이사회는 '거수기'
(표=뉴스토마토)
6일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닥150 기업 중 60%(90개사)의 지배구조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부터 D등급까지 총 6개 등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D(매우 취약)등급으로 50개사(33.3%)로 집계됐으며, 지배구조 ‘우수’(A)를 받은 기업은 7개사에 불과했습니다.
한국ESG기준원은 “지배구조 평가 시 자산규모(2조원, 5000억원 기준)에 따라 각기 다른 모형을 적용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코스닥 기업은 대체로 낮은 수준의 기업지배구조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코스닥 기업은 특히 이사회와 관련해 득점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사회 독립성(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겸직 등) △이사회 활동(이사의 불성실한 참여, 소극적 위원회 활동 등) △정보공개(이사회 및 배당 관련 정보의 불충분한 공개 등) △감사 기구 및 내부통제(감사 및 감사위원회의 독립성 및 전문성 부족 등) 등이 취약했습니다.
코스닥 기업이 코스피 기업에 비해 이사회의 독립성이 떨어지는 것은 상법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자산 2조원 이상의 기업은 사외이사를 최소 3인 이상 선임하고 이사 총수의 과반수로 구성해야 하지만, 해당 자산에 미달하는 기업은 사외이사가 이사회 4분의 1 이상이면 됩니다. 코스피와 비교해 대체로 자산규모가 작은 코스닥 기업의 이사회 독립성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이사회는 사적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는 최고경영자에 대한 견제 기능을 수행하는데요. 이사회의 독립성이 떨어진다면 이러한 견제 기능도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국내 기업들의 이사회는 대표이사의 ‘거수기’ 역할이란 지적이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해 코스닥150 기업 중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은 3곳에 불과했는데요. 1년간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반대 또는 수정 의견을 1건 이상 제시한 기업은 총 8개사에 불과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경우 사외이사를 뽑더라도 업계 전문가보다는 학계, 관료 출신 등을 뽑는 경우가 많다”면서 “명목상 사외이사를 채워 넣었을 뿐인 기업들도 있을 텐데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주주환원과 정보제공도 미흡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내 기업 지배구조, 자본시장 선진화 걸림돌
낮은 지분율로 기업을 지배하는 특유의 한국적 기업지배구조 역시 주주환원에는 부정적입니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사주가 직접 지분을 통해 지배력을 확보기보단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간접적 지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 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주주환원보다 지배주주를 위한 의사결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일례로 간접적으로 상장사를 지배할 경우 회사의 잉여금을 소액주주를 위한 배당 확대 등에 사용하는 것보다 자사주 매입 등에 이용하는 것이 향후 지배력 강화에 효과적입니다. 소각을 전제하지 않은 자사주 매입은 향후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 물적분할을 통한 ‘쪼개기 상장’ 역시 소액주주보단 지배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대표적인 의사결정입니다.
유고은 한국ESG기준원 연구원은 “현금배당, 자사주 매입, 임원 보상 등 기업의 자금이 유출되는 재무적 의사결정에서 지배주주의 이해관계 및 지배력 강화가 중요한 결정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지적했습니다. 이 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 참석해 "좋은 기업의 지배구조는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에서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 요소"라며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12개국 중 8위로 하위권인데 낮은 지분율로 기업을 지배하는 특유의 한국적 기업지배구조가 자본시장 선진화의 걸림돌로 지목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밸류업' 지배구조 개혁 선행해야
‘기업 밸류업’ 정책에서도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후진적 지배구조 개선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밸류업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앞서 기업 밸류업을 추진한 일본 밸류업의 성공 배경에도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지배구조 개선이 있습니다. 일본은 지난 2013년부터 기업 지배구조 개혁에 나섰습니다. 당시 일본 기업들도 ‘쪼개기 상장’과 순환출자 등으로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비판받았습니다.
일본은 기업 저평가 해소와 지배구조 개혁을 위해 2014년 금융청(FSA) 주도로 일본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고, 경영진을 보호하기 위한 순환출자 등을 해소하도록 압박했습니다. 일본 공적기금(GPIF)은 투자기업들에 주주제안 등 주주권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2023년 본격적인 기업 밸류업에 나서자 일본증시 대표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상장기업들의 정보공개 확대와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유도를 통한 지배구조 개선 등이 효과를 보인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밸류업의 핵심은 기업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개선하는 것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박나온 한국ESG기준원 연구원은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는 더 이상 자율적 실천 사항이 아닌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며 “‘밸류업’ 등 정책적 측면뿐 아니라 주주행동주의의 증가와 같은 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고려할 때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핵심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 정책은 주가지수의 큰 폭 상승 등 긍정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일본거래소그룹(JPX)이 수행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정책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박준형 기자 dodwo9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