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박창욱 기자] 쪽방촌 거주자 10명 중 4~5명은 한 달에 1번 정도, 2명은 일주일에 두세 번 음주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음주로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는 비율도 40%나 됩니다. 술을 먹는 이유로는 '할 일이 없고 무료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습니다. 쪽방촌은 나홀로 지내는 1인 가구가 많은데, 적적함을 달래고자 술에 의존하는 겁니다. 일을 하기보다는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려는 쪽방촌 내 분위기도 거주자들의 잦은 음주로 연결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최근 박주민 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실을 통해 서울시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입수, 분석했습니다. 쪽방촌 거주자들의 음주 정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술을 마신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꾸준히 40~50%를 기록했습니다.(2014년은 '술을 마시느냐'만 조사했기에 집계에서 제외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월 평균 1회 이상 음주하는 횟수는 △2015년 48.7% △2016년 50.4% △2017 50.0% △2018년 52.0% △2019년 48.2% △2020년 44.5% △2021년 45.4% △2022년 44.5% △2023년 50.5%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일주일에 2~3회 이상 술을 마신다'고 답한 잦은 음주 비율이 20%에 달했습니다. 연도별로 보면 △2015년 17.6% △2016년 20.3% △2017년 19.8% △2018년 19.7% △2019년 17.2% △2020년 17.9% △2021년 17.1% △2022년 16.2% △2023년 20.7%였습니다. 같은 기간 '거의 매일 마신다'는 답변도 10%대를 유지했습니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쪽방촌 거주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쪽방촌 거주자들의 잦은 음주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았습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음주 사유를 조사한 결과, 9년간 부동의 1위는 '할 일이 없고 무료해서'였습니다. 비율은 40%가량이었습니다. 다른 음주 사유로는 '주변에서 권해서' 또는 '아픈 것을 잊기 위해'라는 등의 답변이 있었습니다. 음주 사유 가운데 '자신이 알코올 중독인 것 같다'고 답한 비율도 꾸준히 10%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쪽방촌 거주자들의 잦은 음주는 일상생활의 지장으로 이어집니다. 음주로 인한 일상생활의 지장 여부를 묻는 질문에 '지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2015년부터 2023년까지 꾸준히 40%대로 집계됐습니다. 이러다 보니 쪽방촌에선 술로 인한 잦은 다툼도 빈번한 실정입니다.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A씨는 "술을 먹고 와서 욕을 하거나 '죽여버릴 거야. 칼로 찔러버릴 거야'라고 위협하는 일들이 많다. 술 먹고 다툼이 벌어져서 경찰이 출동하는 일도 부지기수"라면서 "쪽방상담소 활동가들도 이런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다"라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쪽방촌 사람들이 왜 술을 마시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술 마시고 싸우는 문제만 부각하기보다 '왜 술인지를' 봐야 한다"면서 "낮이나 여유 시간에 싼 값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수단 또한 술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잦은 음주를 예방할) 문화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관련 공간을 조성하는 등 분위기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쪽방촌 실태조사에 음주 항목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쪽방촌엔 복합적인 문제가 많은데, 이런 실태조사를 하면서 음주 항목을 자세히 조사하는 건 쪽방촌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 탓"이라며 "오히려 쪽방촌 거주자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신태현·박창욱 기자 pbtk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