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무더운 폭염날씨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야협치를 통해 민생경제를 살리라’는 민심을 전했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민심을 외면하고 ‘국정마비·탄핵을 향한 극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 정치를 극한 정쟁으로 이끌고 있는 핵심은 대체로 법조계 출신 정치인들이다.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 법무장관 출신의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변호사 출신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당표, 법대 교수출신의 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이다.
야권은 22대 국회 개원 후 두 달 동안 7건의 탄핵안과 9건의 특검법을 합작해 쏟아냈다. 이 전 대표가 밀어붙인 채 상병 특검과 방통위원장 탄핵, 25만원 지원법, 방탄 관련 법안 등에 조국당이 찬성하고, 조 대표가 추진한 한동훈 특검법 등은 민주당이 지원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최근 비공개 회동을 통해 전당대회에서 불거진 김 여사 문자 논란 등 ‘윤-한 갈등’을 봉합하고 민주당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휴전에 나섰다. 그들은 야권에서 밀어붙이고 있는 각종 탄핵 및 특검 폭주에 맞서기 위해 당정 화합과 결속을 선택했다.
이에 이재명 전 대표와 조국 대표도 비공개 회동으로 반격에 나섰다. 그들은 “무도하고 무능한 윤석열·김건희 정권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데 어떤 의견 차이도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총선에서 피고인으로 선거연대를 했던 두 사람이 이번엔 윤 대통령 퇴진을 위한 동맹에 나섰다.
‘이·조 동맹’이 현실화하면 시급한 연금·노동·교육·의료 개혁과 민생·경제 법안 논의는 뒷전이 되고 정치권의 막장대결이 예상된다. 이재명 방탄을 위한 탄핵과 특검, 포퓰리즘용 입법 폭주 그리고 이에 맞서는 ‘대통령 거부권’으로 민주공화국은 무정부상태에 빠질 것이 뻔하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법조계 정치인들을 ‘법 기술자’로 부르고 있다. 여야 정당들이 22대 총선에서 61명이나 되는 법조계 인사들을 끌어들여 공천을 주고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던 이유는 뭘까? 이재명 사법리스크 방탄과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법전쟁’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법 기술자’로서 유용성이 컸기 때문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대거 등장한 법 기술자들의 폭주가 대화와 토론을 억압하면서 민주주의 위기를 부른다. 법 기술자들의 폭주가 상대를 죽이기 위한 공학적 기술에 몰두하면서 대화와 공존을 위한 숙의민주주의와 민주공화국의 공화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다. 법 기술자의 문제는 무엇일까?
기술자(technician)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테크네(tekhne)이다. 테크네는 예술(art), 공예(craft), 기술(skill)의 뜻을 갖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테크네를 생산활동인 포이에시스(poiesis)와 관련된 지식으로 보고, 공론장에 들어가는 시민적 대화활동인 프락시스(praxis)와 연관된 지식인 프로네시스(Phronesis, 실천적 지혜)와 대조적인 개념으로 파악했다.
그는 자유로운 시민들이 폴리스에 모여서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면서 공론장에 참여하는 활동인 프락시스에 필요한 지혜인 프로네시스와 달리 장인의 생산활동인 포이에시스처럼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에 동원되는 기술을 테크네로 보면서 이 둘을 차등화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을 요약해보면, 시민을 위한 정치가는 ‘프락시스를 위한 프로네시스’를 사용하며, 법 기술자는 ‘포이에시스를 위한 테크네’를 사용한다. 이에 테크네로 무장한 법 기술자는 정치의 본령에 부적합하기에 대화와 숙의 같은 프로네시스로 무장하는 게 필요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