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 매표소에 지난 달 28일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문구가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도광산 전시 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쪽에 요청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가 착취당했던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관련 한·일 정부 간 논의과정에 대해, 외교부는 6일 이재정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지난달 27일 일본이 '사도광산 강제성 명시'를 수용하지 않았는데도 한국이 찬성하면서 만장일치로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되자 비판 봇물이 터졌습니다. 그러자 외교부는 "(사도광산 역사를 전시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실제 전시 내용을 한·일 두 나라가 협의해 구성할 때 우리 쪽은 강제성이 더 분명히 드러나는 많은 내용을 요구했으며 일본이 최종적으로 수용한 것이 현재 전시 내용"이라고 했고, 우리 정부가 '강제' 표현을 명시하라고 요구했는지에 대해서도 "표현 문제를 일본과 협상한 것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강제' 표현 요구 일본이 묵살…그런데도 윤정부 세계유산 등재 찬성
그러면서 일본이 앞서 2015년에 군함도(하시마) 세계유산 등재 때 공개 인정했던, 조선인들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against ther will)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undernarsh condition)에서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다는 내용이 이번에도 전제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6일 답변서를 통해 그간 외교부 설명이 거짓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강제'표현을 협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일본에 묵살당했고 그럼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라고 손을 들어줘 버린 겁니다. 애초 외교부가 방패막이로 내세운 '군함도 등재 때 일본의 강제동원 인정' 자체가 허망한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날 바로 일본 외상이 "강제노동을 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뒤집었고 6년 뒤인 2021년 4월 일본 각의(국무회의) 차원에서 "국민징용령에 의한 한반도 출신 노동자에 대해 '강제연행', '강제노동'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결정하기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외교부는 극구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지만, 결국 "일본이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에 상설 전시를 하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1500명인 것과 노동환경이 가혹했다는 점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적으로 수용했다“는 지난달 28일 자 <요미우리신문> 보도가 맞았던 겁니다. '기름장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외교부가 딱 걸린 셈입니다.
조태열 현 외교부 장관은 '군함도 등재' 때 외교부 주무 차관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전체 상황을 잘 알면서, 등재 결정이 표 대결도 아닌 만장일치제이기 때문에 반대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도 함께 '대못'을 박아버렸습니다.
이미 예고돼 있던 참극입니다.
집권 3년 차 윤석열정부는 '한·일 관계 개선'을 최대 업적으로 자부합니다. '동맹' 표현이 서슴지 않고 나올 정도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했고, 이를 위해 그간 '약한 고리'였던 한·일 관계를 밀착시켰습니다.
지난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관련 "여러 가지 현안이나 과거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도 "확고한 목표 지향성을 가지고, 인내할 것은 인내할 것은 인내해 가면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과거사가 한·일 관계 걸림돌이라는 인식을 만천하에 드러낸 겁니다.
이런 상황이니, 일본에 한국은 얼마나 손쉬운 상대이겠습니까? 이쯤 되면 협상이랄 것도 없습니다. 지난해 일제 강제동원 배상 '제3자 변제' 건도, 이번 '사도광산' 건도 한국은 일본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입니다.
고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사진=뉴시스)
'한·일 밀착' 미국 전략 편승 전략? 윤정부 친일 성향이 더 본질 요인
이렇게 지독한 윤 대통령의 '일본 사랑'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적극 '편승'일까요? 아니면 윤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의 '친일 성향' 때문일까요? 물론 두 가지가 섞여 있겠으나, 후자를 더 본질적 요인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설파하고 '간도특설대-백선엽'까지 옹호하는 뉴라이트 인사들의 전면 배치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한국학의 본산' 한국학중앙연구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기리는' 독립기념관 같은 국가 정체성 상징 기관들에 내리꽂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독립기념관이 아니라 '식민지배기념관'이나 '식민지근대화기념관'이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는 비판이 절로 나옵니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 지경이 된 배경을 '용산에 있는 밀정의 장난'이라며 윤 대통령을 피해 가려 하지만 말장난일 뿐입니다.
행여라도 '동북아 안보 환경 변화에 따른 국가전략'이라는 외피를 두르려 한다면, 한·일 과거사와 정치·군사 문제를 분리해서 투 트랙 전술로 가면 될 일입니다. 이게 역대 정부의 대일본 기본 전략이었습니다.
이 정부가 끝나고 나면, 한·일 과거사 문제는 다 해결돼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일본이 원하는 대로 말입니다. 현 일본 기시다 정부의 대외전략을 이미 결정한 고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5년 8월 '전후 70년 담화'로 과거사 문제는 종지부를 찍고 더 이상 사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대로 말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