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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위로하는 노래, 위로하지 못하는 노래: 과 <우리들의 죽음>
입력 : 2024-08-19 오전 6:00:00
2021년 발매된 밴드 더킬러스의 7집 타이틀곡은 <Quiet Town>, ‘조용한 마을’이다. 노래의 전개는 당혹스럽다. 기차 사고에 대한 한 인터뷰가 트랙을 연다. 사운드는 킬러스식 변주가 더해진 컨트리 느낌이지만, 가사는 막 20살을 앞두고 아이까지 품었던 한 젊은 연인이 기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어떤 반전도 없이 이어지는 후렴은 ‘조용한 마을’을 목가적으로 찬양한다. “가족은 단단하고, 선한 사람들”은 “사는 법을 안다.”
 
이 노래는 밴드 싱어 브랜든 플라워즈의 유년시절 경험을 토대로 한다. 사고는 실화이며, 2절의 마약 중독과 그로 인한 젊은이들의 죽음 역시 고향에서의 경험이다. 평화로운 소도시, 신실한 몰몬교도들이 살던 네파이(Nephi)도 세상의 변화를 피해가지 못했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 앞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예수님께 의지하고, 용서하는 데 빠르다”고 해서 이 사건들이 피할 수 없는 재난으로 취급될 순 없다. 연인의 미래를 앗아간 것은 “유니온퍼시픽트레인” 소속 기차였고 사고는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2-3년에 한 번씩 반복되었다.
 
죽은 딸을 묻는 아버지의 추도사(eulogy)를 언급하는 이 노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추도사이다. 고대그리스어 ‘잘’을 뜻하는 ‘eu’와 ‘말’을 뜻하는 ‘logos’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추도사란 망자에 대해 ‘잘 말해주는’ 것이다. 동시에 이 노래는 슬픔을 꿋꿋하게 극복하고 건실한 삶을 살아나가는 남은 사람들을 찬사하는 ‘에우-로지’이기도 하다. 비극을 기억하면서도 이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찬양하는 것은 그 힘으로 살아나가야 할 남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유튜브에 게시된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네파이 내외 사람들과 당시 젊은 연인의 지인들까지도 서로 기억과 경험, 고통에 대한 위로를 나누며 이 노래가 건넨 희망에 대해 칭찬하고 있다.
 
비슷한 결의 노래를 우리 대중음악에서 찾자면, 정태춘과 박은옥의 <우리들의 죽음>이 금세 떠오른다. 부모가 일터에 나간 사이 화재로 자녀들이 사망한 사건을 다룬 이 노래가 준 충격과 울림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노래가 적어도 단 하나, 위로에는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Quiet Town>이 사건을 직면하면서도 남겨진 사람들을 칭찬하고 있다면, 이 노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자신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말하는 방식을 취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사람과 “잊을 수 없는” 사람 사이에 선이 그어진다. 이 노래에는 죽은 아이들로부터 “거기 함께 있었다면”이라는 말을 듣는 부모에 대한 헤아림이 없다. 이제 자유로워진 아이들은 이 세상의 부조리 한복판에 도로 주저앉혀져 자신들의 가난을 노래한다. 어떤 선의를 내세우든, 이는 위로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30년도 더 된 노래를 새삼스레 탓하자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마을”의 사람들에게는 있었던 것이 한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에겐 있었을까? 플라워즈의 일부로 남아있는 고향을 그들은 “가난에 못 이겨” 등져야 했고, “어려움에 처한” 당신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네파이와는 달리, “각각이 독립된 구조로 돼있”는 “6개의 지하방”은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낭떠러지” 같은 곳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찬사를 보낼 것도 없고, 그래서 위로도 불가능한 험한 세상을 통과해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한치라도 우리가 위로에 조금은 유능해졌으면 좋겠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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