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원정기자]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계철, 이하 방통위)가 방송사업자를 대상으로 콘텐츠 경쟁력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기준으로 프로그램 제작 지원 사업을 펴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방송업계 반발이 잇따른 가운데 방통위는 당초 방침을 일단 보류한다는 입장이지만 여진이 계속되는 양상이다.
문제의 핵심은 콘텐츠 경쟁력을 수치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점인데 단순한 일률적 줄 세우기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방통위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원장 김동욱, 이하 KISDI)에 의뢰해 만든 '방송사업자 콘텐츠 경쟁력 평가방안(이하 보고서)'은 방송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자원 경쟁력 ▲프로세스 경쟁력 ▲성과 경쟁력에 따라 19개의 세부 평가항목을 마련한 것이다.
방통위는 이를 지상파방송사업자, 방송채널사용사업자,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위성방송사업자, 지상파DMB사업자, IPTV콘텐츠제공사업자 등 6개 사업자를 대상으로 평가하고 방송프로그램 제작지원 사업의 심사기준에 포함시켜 정부 지원사업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평가 취지와 관련해 보고서는 “콘텐츠가 부가가치 창출과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21세기 창조경제 시대를 맞이하여 방송산업의 콘텐츠 경쟁력 제고에 관한 산업적, 정책적 관심이 부각되고 있고 콘텐츠 경쟁력 평가는 방송콘텐츠 산업진흥 정책수립 및 지원사업 집행을 위한 실증적인 근거자료를 도출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지난달 25일 업계 인사를 모아놓고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무엇보다 평가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고 콘텐츠를 산술화 한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채널업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콘텐츠 경쟁력을 평가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심사항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평가 항목 가운데 제작비를 많이 쓸수록 점수가 떨어지는 부분이 한 예”라고 설명했다.
지상파방송사 모임인 한국방송협회(이하 방송협회)는 13일 방통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경제적 성과 경쟁력으로 설정한 ‘국내시장 수익성’과 ‘해외시장 수익성’은 방송 프로그램 유통 구조상 회계연도 내에 평가할 수 없는 항목”이고 “사회적 성과 경쟁력으로 설정한 콘텐츠 ‘내용 심의 규정 준수여부’, ‘콘텐츠 수상 실적‘, ’방송콘텐츠 산업발전 기여도‘는 경제적 성과와 상충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방송협회는 ▲계량적 측정이 어려운 콘텐츠 경쟁력을 무리하게 수치화, 사업자별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단순비교 방식을 채택한 점 ▲콘텐츠 제작 유통 시장의 현실과 규제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점 ▲기존 방송평가와 대부분의 실질적 내용이 중복된다는 점을 들어 제시된 안은 폐지 혹은 전면적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상파뿐 아니라 유료방송의 최대 콘텐츠사업자 CJ E&M도 같은 이유를 들어 평가 자체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이하 케이블협회)의 경우 상황을 봐서 별도 입장을 전한다는 방침이지만 내심 방통위가 서열을 매기는 것 자체에는 반대하는 상황이다.
케이블협회 관계자는 “콘텐츠 자체가 평가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며 “방송 평가는 말 그대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줄 세우기’ 문제뿐 아니라 콘텐츠 평가를 위해 방통위가 방송사에 내밀한 자료를 요구하는 점 역시 업계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지점이다.
방송협회 관계자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항목도 들어 있고 방통위가 물밑으로 작업하는 모습도 보인다”면서 “사업자들 의견을 수렴한다고 하는데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방통위는 지원을 위한 근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상태론 규제로 작용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업계는 해외에서도 시도된 적 없는 콘텐츠 수치화가 할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아가 방통위가 국내 방송계 현실을 무시하고 사업을 추진한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한마디로 말해 방송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상업적 지표만 갖고 줄 세워서 한쪽만 밀어주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방통위 관계자는 "평가안 발표는 12월 중으로 연기됐다"며 "세부날짜는 추후 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