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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세상사 모든 일은 희극'..풍자적 무대 돋보여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
입력 : 2013-03-20 오후 5:37:55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오페라 <팔스타프>가 20세기를 배경으로 관객을 찾아온다.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국립오페라단이 준비한 작품이다.
 
<팔스타프>는 베르디의 마지막 작품이자 유일한 희극오페라다. 비련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여타의 베르디 작품과 달리 <팔스타프>에서는 여인들이 힘을 합쳐 남자들을 향해 일대 반격에 나선다. 이야기의 토대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와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이다. 늙은 배불뚝이 기사 팔스타프가 유부녀인 두 여인에게 같은 내용의 연애편지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한바탕 유쾌한 소동을 그린다.
 
20일 미리 공개된 리허설을 통해 만나본 이번 오페라는 시대적 배경을 1597년에서 자본주의 시대 초반인 20세기 초로 옮겼다. 물질적 가치가 융성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두 시대가 일맥상통하는 데다, 동시대 관객에게는 아무래도 20세기가 더 친숙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무대에는 16세기 말과 20세기 초, 그리고 베르디와 셰익스피어가 공존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음악은 16세기 말 이탈리아적 정취를 유감없이 뿜어낸다. 체크무늬 벽과 버버리 코트 등 시각적 표현이 셰익스피어가 빚어낸 영국 중간계급의 편견을 20세기 초 버전으로 표현한다.
 
  
 
 
 
 
 
 
 
 
 
 
 
 
 
 
 
 
 
 
연출을 맡은 헬무트 로너의 현대적 해석은 무대 곳곳에서 묻어났다. 무대장치들은 단순한 배경에 머물지 않고, 등장인물의 내면을 상징화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등 메타적 성격을 띈다.
 
늙은 귀족 팔스타프가 머무는 가터 여관 장면의 경우, 무대와 관객석 사이 프로시니엄에는 여성의 가슴이 그려진 대형 그림이 걸린다. 화려한 목걸이가 드리워진 여성의 가슴, 그 위에 얹혀진 손이 팔스타프의 정욕과 물욕을 표현한다.
 
벽면에 드리워진 사슴 뿔 장식 역시 팔스타프의 그릇된 욕망을 풍자한다. 원작에 따르면 마지막 장면에서 팔스타프의 머리에 얹혀지는 사슴 뿔 장식은 이 작품의 경우 첫 장면인 가터 여관에서부터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팔스타프가 유부녀 알리체를 유혹하기 위해 방문하는 포드(알리체의 남편) 집 응접실에서는 무려 4개로 늘어난다.
 
포드 집의 정원에 놓인 키 큰 화분들도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다. 수많은 화분들은 남의 눈을 피해 숨거나 남을 엿보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남자 무리와 여자 무리는 서로에게 비밀로 한 채 정원으로 숨어들어 팔스타프를 혼내 주기 위한 작전을 논의한다. 이 와중에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는 펜톤과 난네타 커플은 남녀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정원에 숨어 들어 사랑의 밀어를 나눈다.
 
지휘자 줄리안 코바체프와 그가 이끈 코리안심포니는 세련된 무대에 걸맞는 연주를 선보였다. 특별한 아리아가 없는 오페라인데도 탄탄한 음악적 해석을 통해 인물의 존재감이 뚜렷이 살아났다. 팔스타프가 자신의 뚱뚱한 배를 노래할 때는 금관악기가, 여성들이 팔스타프를 골려줄 방법을 수다스럽게 논의할 때는 목관악기가 적절한 포인트를 주며 음악과 대사의 일치감을 살려냈다.
 
베르디와 푸치니 작품의 스페셜리스트로 알려진 바리톤 앤서니 마이클스 무어는 풍부한 성량과 능청스런 연기로 팔스타프를 연기했다. 아름다운 미모가 돋보이던 알리체 역의 소프라노 미리암 고든 스튜어트는 말하듯 노래하다 순식간에 고음으로 내달리며 역량을 과시했다. 대부분 무난한 연기와 노래를 선보였지만 포드 역의 바리톤 이응광의 솔로 대목이 2막1장 끝 부분에서 오케스트라에 대부분 묻혀 아쉬웠다. 다행히 마지막 3막 부분에 이르자 다시 제 성량을 찾은 모습이었다.
 
 
 
 
 
 
 
 
 
 
 
 
 
 
 
 
 
 
 
 
한바탕 소란을 겪은 후 '세상사 모든 일은 희극'이라는 팔스타프의 대사와 함께 마침내 무대는 합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베르디 특유의 희극성과 음악이 어우러진 이번 무대는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제작 국립오페라단, 연출 헬무트 로너, 지휘 줄리안 코바체프, 무대·의상 헤르베르트 무라우어, 조명 라인하르트 트라우프, 출연 앤서니 마이클스 무어, 한명원(더블), 이응광, 정호윤, 박진형, 민경환, 이대범, 미리암 고든 스튜어트, 서활란, 티쉬나 본, 김정미,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의정부시립합창단, 고은경발레 A.R.T.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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