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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F)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바로크 음악의 기괴한 만남
'2013통영국제음악제' 개막작 <세멜레 워크>
입력 : 2013-03-24 오전 8:38:44
[통영=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2013통영국제음악제(TIMF)' 개막공연 <세멜레 워크>를 보고나니 엉뚱하게도 식품 포장지 뒷면에 적힌 성분표시가 떠올랐다. 이 작품은 패션쇼와 오페라,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가 고루 섞여 있는 공연이다. 장르를 특정하기가 어렵지만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음악극 정도가 되겠다.
 
<세멜레 워크>의 원작은 헨델의 오라토리오 <세멜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왕’ 제우스와 ‘신이 되고 싶었던 여자’ 세멜레 이야기가 공연의 소재라는 것, 원곡의 선율이 음악적 재료로 사용됐다는 것, 합창이 등장한다는 것 외에 원작과 공통점이 별로 없다.
 
일단 공연시간부터 확연한 차이가 난다. 공연팀은 원작 중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부분을 발췌해 대본으로 재구성하며 상연시간을 반절 수준으로 과감하게 줄였다. 주제의식도 사뭇 다르다. 원작이 제우스, 헤라, 세멜레 간 삼각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세멜레의 자기 욕망 확인에 주목한다.
 
무대는 패션쇼의 런웨이처럼 꾸려졌다. 의상은 무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이다. 런웨이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딛으며 패션과 음악, 연극의 이종교배를 시작하는 것은 독일의 고음악 연주단체인 칼레이도스코프 앙상블 단원들이다.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펑크록스타이지만 이들 손에는 바로크 원전악기가 들려 있다. 얼굴에 칠해진 하얀 분칠은 연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앙상블 단원 일부가 재치 있는 워킹을 선보인 후 무대 아래 편에 자리를 잡자, 이윽고 전문모델의 워킹 행렬이 무대 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연주자들과 달리 모델의 의상은 오트쿠튀르 버전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이 관객의 눈을 대번에 사로잡는다.
 
화려한 의상과 고음악 연주의 향연 속에 이따금씩 등장하는 상징적인 동작들이 극 전체의 의미전달에 힘을 싣는다. 이 가운데 모델 중 한 명 이 사과를 깨물어 먹으며 금기가 깨질 것을 암시한다. 세멜레 역을 맡 은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자모즈스카는 어느 틈에 런웨이 위에 올라 모 델들과 함께 워킹하며 노래를 부른다. 주피터 역할을 하는 카운터테너 아르민 그라머는 관객석을 가로지르며 등장하는데, 이윽고 무대 위에 올라 모델들의 의상을 손으로 만지며 탐하기 시작한다. 일상복 차림으 로 관객석 곳곳에 미리 숨어들어 있던 창원시립합창단은 살의 쾌락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세멜레의 욕망을 인간 일반의 것으로 확장한다 .
 
시간이 흐르면서 소프라노의 의상은 하이패션으로 옮겨가고, 그녀는 죄책감에 바닥을 기어다니며 "나의 오만과 불경건한 허영심을 회개하기엔 이제 너무 늦었구나"라고 탄식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녀는 차차 불멸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기 시작한다. 제우스가 불을 담은 수레를 끌고 오며 세멜레의 운명을 예고하지만 무대 뒤 커다란 직사각형 반사체에 자기 모습을 연신 비추던 그녀는 결국 그곳에 가득 밝혀놓은 조명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공연에 사용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의상은 2011년 ‘겟 어 라이프(Get a Life)’ 컬렉션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상징과 경고를 담은 이 컬렉션은 결국 자기를 파괴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멸이라는 불가능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는 세멜레와 현대인의 모습을 담아낸다. 세멜레는 불타는 듯한 헤어 스타일, 그리고 재투성이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은 채 최후를 맞는다.
 
 
음악적인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말하는 듯 노래하는 레치타티보, 그리고 오케스트라 반주인 아콤파냐토 부분 등을 극단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가령 레치타티보 부분에서 솔리스트들은 중간중간 외마디 말이나 고함을 내지르고, 아콤파냐토 부분에서 앙상블은 고음악 고유의 소리를 전자기계음으로 뒤틀어 놓는 식이다. 음악의 극적인 변화 때문에 다소 짧은 길이의 극임에도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진다.
 
대본과 음악, 의상이 관객의 시청각을 골고루 자극하며 극의 개념을 구축해가는 이 작품은 하노버의 쿤스트페스트슈필레 헤렌하우젠에서 초연됐으며 '2013통영국제음악제'를 통해 아시아무대에 처음으로 올랐다. 23일까지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연출 루드게르 엔겔스, 의상 비비안 웨스트우드, 원작 헨델의 오라토리오 <세멜레>, 제작 쿤스트페스트슈필레 헤렌하우젠, 지휘 올로프 보만, 솔리스트 알렉산드라 자모즈스카, 아르민 그라머, 연주 칼레이도스코프 앙상블, 합창 창원시립합창단, 메이크업 M.A.C., 헤어 TIGI.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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