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소극장 공연을 주로 하는 신진극단인데도 업계 사람 외에 일반 관객으로 객석 대부분을 꽉 채우는 극단, 전속 배우•작가•연출가•스태프를 둔 채 작품활동을 꾸준히 하는 극단, 희곡집(<시동라사>, <목란언니>)도 내고 희곡낭독 팟캐스트(‘희곡을 들려줘’)를 만드는가 하면 공연 레퍼토리도 차근차근 축적해가는 극단.
극단 달나라동백꽃을 보면 요즘 대학로에 이처럼 다채롭고 신나게 활동을 하는 신진극단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은 생각이 든다.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의적인 시선도 받고 있다. 출범한 지 이제 2년도 채 되지 않은 극단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처럼 극단 달나라동백꽃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작품들이 하나 같이 현실의 냉혹함을 가감 없이 표현하면서도 사회의 비주류에게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로풍찬 유랑극장>과 <달나라 연속극(사진)>, <뻘> 등 이 극단의 작품에는 어김없이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환경에 내몰리는 개인이 등장한다.
그러나 작품은 희한하게도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작가와 연출이 이들을 다루는 방식이 꽤나 흥미롭기 때문이다. 극은 인물들에게 애잔함과 유쾌함을 번갈아 덧씌우며 독특한 페이소스를 빚어낸다.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공동대표인 김은성 작가와 부새롬 연출을 서울 석관동에서 만나 그 동안 만든 연극에 대한 이야기, 오는 6월 13~16일 극단 출범 이후 최초로 시도하는 공동창작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작가, 연출과 나눈 일문일답.
-같은 극단으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서로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은성)작품 만드는 과정에서 장점을 많이 느낀다. 연출을 하려면 어떤 심적인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냉정하게 보면 나는 좀 부족하다. 어느 배우가 만약 연기를 잘 못하면 나는 진짜 그 배우가 밉고, 속으로 분노하고 그런다(웃음). 그런데 작가와 연출로 만나 솔직히 얘기하다 보니 저 친구는 안 미워하더라. 끝까지 배우를 책임지고 가는 모습을 보고 그런 면에서 어른스럽다고 생각하게 됐다.
또 텍스트를 진심으로 인격화하는 연출이 있는가 하면, 도구화하는 연출이 있는데 이 친구는 그런 점에서도 텍스트를 인격화 하는 면이 있다. 안 그런 경우에는 김명화 선생님이 희곡집에 쓰신 말을 인용하자면 '진심으로 목을 조르고 싶어진다'(웃음).
▲(부새롬)무엇보다도 글을 잘 쓴다는 게 장점이다. 다른 작가에게 이런 말 하기 미안하긴 하지만, 솔직히 텍스트가 안 좋은 공연이 있지 않나. 다른 공연 보러 가서 너무 재미없을 때 김은성의 장점을 느낀다(웃음).
극단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나는 일을 천천히 하고 작게 벌리는 성격인데 은성이는 일을 많이 하거나 크게 벌리는 성격이다. 극단 운영을 하려면 그런 성격이 필요하다. 만약 김은성 없이 나만 있었으면 달나라동백꽃은 사람들에게 안 알려졌을 수도 있고, 알려지기까지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 김은성에게는 '극단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다. 연출가로서는 아니라고 자기가 말하지만 대표로서 뛰어난 점이 있다.
▲(김은성)다혈질인 것 같다. 40대 중후반 넘어가면 옛날에 선생님들 연습실에서 뭐 집어 던져가면서 작업하듯 그런 식으로라도 연출을 한 번 해볼까(웃음).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뜻에 대해 알려달라. 극단이 표방하는 방향은?
▲(김은성)동백꽃은 겨울 내내 오래도록 준비를 하다가 봄이 막 오려고 할 때 한 이틀 피고서 너무 아름다운 상태에서 바닥에 툭 떨어지며 진다. 사실은 피는 순간에 지는 것이다. 그게 연기 예술, 무대 위 배우의 연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개화되는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예술, 그래서 더 아름다운 현장 예술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동백꽃'이 주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 그걸 부드럽게 해주는 미사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달나라'를 앞에 붙이니까 귀엽더라. 그리고 태양과 비교해보자면 달이 상징하는 게 음이지 않나. 플라톤적이라기보다는 디오니소스적이고, 아직도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연출은 달 표면의 울퉁불퉁한 그런 느낌이 아무것도 없는 텅빈 극장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채택이 됐다.
-또 어떤 이름들이 후보군에 있었나?
▲(김은성)극단 이름 짓는 게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다. '극단 삼성' 있었다. 절대 망하지 않는 극단(웃음). 연출•작가•배우 셋의 합이라는 뜻에서 '삼합'도 있었고, '은성극장'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굉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극단 달나라동백꽃의 공연은 전체적인 분위기는 대중적인데 늘 비주류적 시각을 담고 있다. 극의 시공간 배경이 약간은 좌측 시각에 선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왜 그런가?
▲(부새롬)둘 다 태생이 가난해서 그렇다. 우리 극단원들도 다 가난하다(웃음).
▲(김은성)그건 아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있어 보여야지.
▲(부새롬)김은성 작가랑 나는 사실 작품에서 추구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생각하는 것들이 좀 비슷한 것 같다. 현대사나 역사, 사회를 바라보는 시점이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니까 이런 시선이 좌측으로 보이는 것이지 사실 별로 그렇지도 않다.
▲(김은성)20대가 한국에서 연극을 선택해서 작업한다는 것,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합당하고 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늘 든다. 특히 좌파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 웃기는 거라 생각한다. 본래 연극예술이라는 행위 자체가 사회비판적 시선을 담보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연극에 늘 지방의 색깔이 반영되곤 한다.
▲(김은성)처음에 연극을 배울 때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께서 '사실 연극은 변두리를 다루는 게 맞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동감한다. 사투리, 지역, 비주류 같은 것을 다루는 게 뭔가 합당하게 느껴졌다.
-극단원을 뽑는 기준은 무엇인가?
▲(부새롬)연습을 하다 보면 배우들 중에 자기창작 욕구가 있는 배우들이 있다. 배우도 사실 스스로의 연기를 연출하지 않나. 그 연출력이 좋은 배우, 또 그런 작업을 재미있어 하는 배우,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해오는 배우, 그러면서 저랑 잘 맞았던 배우들이 극단원들로 들어왔다.
-'희곡을 들려줘'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녹음하다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
▲(김은성)NG를 내지 말아야 하는 컨셉트가 아니기 때문에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우리는 무편집으로 간다.
▲(부새롬)그래도 한 번 있었다. 희곡 <연변엄마> 공개방송 때 기술적인 문제가 생겨서 희곡의 마지막 부분이 방송 안 된 일이 있었다(웃음). 그 외에는 괜히 가야금 가져와서 현을 튕기며 녹음하는 등 편하게 한다.
-6월에 새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연출진과 극작가, 배우가 모두 함께 텍스트 작업에 참여한다고 하던데 어떤 작품인가?
▲(부새롬)아직 워크숍 과정 중이라 제목도 미정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반 지하 방에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일종의 몽타주가 될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각각 그렸을 때 이를 테면 소외계층이 그려질 것으로 생각핸다. 내용적으로는 <보이체크>에서 영감을 받은 게 있다.
-인기 많은 소규모 극단의 형편이 궁금하다. 그래도 공연티켓이 잘 팔리는 극단인데, 수익은 어느 정도나 되나?
▲(김은성)궁극적으로 수익이 발생 안 된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소규모 세트를 쓰는 공연이라도 소극장에서 공연을 한 달 한다 했을 때 정상적으로 합계하면 제작비가 3000만원 정도 들어갈 거다. 근데 입장 수익이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그렇게 안 된다.
공연 한 편 올릴 때 프로덕션 과정만 최소 3개월은 걸린다. 결국에 공연이 되게 잘 돼서 하루에 티켓 판매 잘 될 때 70만원 정도를 번다. 정말 잘 됐을 때 그렇다. 그렇게 돼도 3개월 고생한 배우들의 개런티를 줄 때 100만원이 안 된다. <달나라 연속극>의 경우 배우 수가 적으니 100만원을 넘겼지만, <로풍찬 유랑극장>의 경우 배우가 너무 많이 나오니까 안 되더라.
▲(부새롬)입장 수입 자체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우리 공연의 표가 많이 팔리니까 액수가 많겠지만 그걸 만약 정상적으로 한다면.. 가령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티켓수입에서 거꾸로 공연 제작비와 개런티를 다 빼면 마이너스가 된다. 사실은 항상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의 노동력을 어떻게 보면 착취하게 된다.
-잘 나가는 극단도 마이너스라면 해결책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김은성)답이 없는 거다. 그러니까 연극해서 돈 벌 생각하면 아예 안 된다. 그건 가져야 하지 말아야 할 꿈이다(웃음). 티켓료를 3만~5만원으로 올리지 않는 한, 유료관객이 70~80명이 계속 오지 않는 한 돈을 벌 수 없는 구조다. 또 연극은 다른 광고가 붙을 수 없는, 반자본주의적 형태의 예술이지 않나. 근데 왜 우리는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일까(웃음). 놀려고 하는 거다. 보통 요새는 돈 내고도 에어로빅도 하고 수영도 다니고 하지 않나. 근데 돈 안내고 연극하는 거다.
▲(부새롬)직업이 아니라 취미생활을 되게 열심히 하는 거다(웃음). 이걸로 돈을 벌어 먹고 살아야 직업인 건데. 평생을 취미생활만 하는 거다. 우리 배우들이 88만원 세대만 되도 영화작업 못 하게 하겠다고 우리끼리 얘기하기도 한다. 영화를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김은성)왜, 옛날 책에 보면 가난한 극단의 표지사진이 나오지 않나. 오직 연극에만 몰두하면서 특유의 메소드가 탄생하고, 공동생활도 하는 그런 극단이 부럽다. 하지만 늘 생존의 문제가 목 앞까지 치고 들어오니까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