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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억압과 함께 커지는, 자유를 향한 갈망
국립오페라단의 베르디 오페라 <돈카를로>
입력 : 2013-04-24 오후 12:52:38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국립오페라단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지난 3월 선보인 <팔스타프>에 이어 베르디 오페라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돈카를로>를 무대에 올린다. 25일부터 2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진행되는 본 공연에 앞서 지난 23일 전체 리허설이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국립오페라단의 <돈카를로>에서는 훌륭한 오페라 가수들의 목소리 외에 작품 고유의 휴머니즘을 과장 없이 차분히 살려낸 엘라이저 모시스키의 지적인 연출력이 돋보였다. 16세기 스페인 궁정의 실화를 바탕으로 비극적 사랑, 부자 간의 갈등, 정치적 이상의 좌절 등 다양한 소재를 각각 선명하게 다루면서도 이 모두를 ‘자유를 향한 갈망’으로 통합해 내며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공연은 4막으로 구성된 이탈리아어 판을 토대로 진행됐다. 사랑하는 약혼녀를 어머니로 맞이하며 마음 속 깊이 치명상을 입은 왕자 돈카를로, 신의와 우정을 지키는 충직한 신하 로드리고, 나이 든 왕과의 정략결혼으로 불행한 삶을 사는 왕비 엘리자베타, 질투심 많은 왕의 공녀 에볼리, 아들의 여자를 빼앗았지만 사랑을 얻지 못하는 독재자 왕 필리포, 하늘의 권력으로 땅의 권력을 지닌 왕을 짓누르는 종교재판관 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비극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공연에서는 연출 엘라이저 모시스키의 차분한 연출력에 걸맞는 무대 세트 활용방법이 눈에 띄었다. 다소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보수적인 세트 사용방식이 주제를 통일하고 이 극의 이해를 돕는 데 보이지 않는 큰 역할을 한다.
  
지난 3월 국립오페라단의 <팔스타프>의 무대도 선보인 바 있는 무대 디자이너 헤르베르트 무라우어는 이번 공연에서 왕의 서재 장면을 제외하고 2층짜리 회색 벽체를 반복해서 배경으로 썼다. 배치방식이 약간씩 변형되기는 하지만 이 벽체는 수도원, 감옥, 왕비의 정원, 광장 등의 장소에서 기본 배경 역할을 한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어둡고 음침한 벽체 덕분에 다양한 극중 사건들은 ‘자유의 억압’이라는 키워드로 쉽게 모아질 수 있었다. 독재자 왕의 고독을 표현하는 왕의 서재 장면의 경우에도 거대한 책꽂이 너머로 감옥 철창같은 벽체가 어렴풋이 보인다. 
 
이번 공연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출연 오페라 가수들이 연기력과 노래실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동양인 최초로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입성한 기록을 지닌 베이스 강병운(서울대 음대 교수, 65)이 처음으로 국내 오페라 무대에 올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신의 주특기인 필리포 역을 맡은 강병운은 강력한 저음을 바탕으로 권력자의 고독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특히 서재 장면에서 선보이는 아리아 ‘그녀는 날 사랑한 적 없다’의 경우, 연기동작과 소리표현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짙은 감동을 선사했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과 연관성을 지니며 극의 중심을 잡는 주요인물인 로드리고는 바리톤 공병우가 맡았다. 공병우는 자신을 희생하며 자유의 씨앗을 뿌리는 로드리고를 부드러운 음색으로 안정감 있게 표현해냈다. 테너 나승서의 경우 섬세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호소력 있는 돈카를로를 빚어냈고, 왕비 엘리자베타로 분한 소프라노 박현주는 놀라우리만큼 가느다란 목소리부터 다분히 격정적인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깔을 소화해 냈다. 이 밖에 공녀 에볼리의 치명적 매력을 표현하는 메조소프라노 나타샤 페트린스키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돈카를로> 특유의 넓은 음색범위를 유감없이 표현해낸다.
 
지휘자 피에트로 리초가 이끈 프라임필하모닉의 관현악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지휘자는 등장인물의 복잡한 감정선을 하나하나 살려내면서도 <돈카를로> 특유의 웅장함도 놓치지 않는 등 풍부한 곡 해석으로 극 전체를 감쌌다. 특히 돈카를로와 로드리고가 부르는 우정의 이중창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필리포와 엘리자베타, 로드리고, 에볼리가 함께 부르는 4중창 ‘아, 저주받을 지어다’ 등 여럿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지휘자의 진가가 드러났다. 성악가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돋보이게 하면서도 시시각각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의 다이내믹도 살려내는 섬세한 지휘 덕분에 극의 몰입도가 높아졌다.
 
작곡 주세페 베르디, 지휘 피에트로 리초, 연출 엘라이저 모신스키, 무대 헤르베르트 무라우어, 의상 잉게보르크 베르네르트, 조명 라인하르트 트라우프, 출연 강병운, 임채준(이상 필리포 역 더블캐스팅), 나승서, 김중일(이상 돈카를로 역 더블캐스팅), 공병우, 정승기(이상 로드리고 역 더블캐스팅), 박현주, 남혜원(이상 엘리자베타 역 더블캐스팅), 나타샤 페트린스키, 정수연(이상 에볼리 역 더블캐스팅), 양희준, 전준한, 최우영, 연주 국립합창단,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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