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현대 연극 중에는 작품 자체의 완결성보다 극의 개념을 우선시하는 사례가 왕왕 있다. 작품이 개념에 종속되고, 예술가의 사고 자체가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다. 이런 작품을 접할 때 당연히 관객의 작품 감상법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관객은 연출가가 추구한 과정 또는 관념을 찾아내고자 공연에 동참하게 된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의 풀이 방식이 너무 어렵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싱거울 때가 있다. 이럴 경우 관객은 놀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다. '두산인문극장 2013'의 일환으로 공연된 <서울연습-모델, 하우스>는 싱거운 쪽이었다. 작품을 통해 공연팀이 던진 질문은 제법 진지했지만 질문을 무대 위에 풀어가는 과정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사진제공=두산아트센터)
공연팀이 제기한 문제 의식은 '삭막한 도시 속에서 과연 나는 어디에 정주할 수 있는가'다. 이 문제는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 대표인 이경성 연출이 꽤 오랫동안 천착해온 질문이기도 하다. 그간 이 극단은 <당신의 소파를 옮겨 드립니다>, <강남의 역사> 등의 작품을 통해 도시공간에 대한 비판적 언급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 바 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밝힌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일단 무대공간과 무대장치의 설득력이 떨어진 점이 가장 아쉽다. 바닥과 배경을 덮은 흰색 무대는 서울이라는 특정 공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스크린처럼 느껴졌다. 배우들의 위치와 거리에 다른 음계를 부여하고자 무대바닥에 적용했다는 키네틱 음향기술의 효과도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소리의 좌표로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상징하려는 의도는 개념적인 단계에서 그만 멈춰버렸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무대 위에서 설익은 질문은 그대로 노출됐다. 공연은 세계창조를 상징하는 '숨'과 소통을 상징하는 '시선'이라는 키워드 아래 '풍선 부는 소녀', '질의응답하기', '간식 맛있게 먹기', '광장 만들기', '놀이터', '5분', '나와 풍선' 등 총 7장으로 진행됐다.
배우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대신 카메라나 마이크 등 미디어의 힘을 빌리고, 진지한 속내를 털어놓다가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말을 중단하며,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 인스턴트 식품으로 혼자 끼니를 때우는 모습으로 서울 사람들의 풍경을 대체한다.
공연이 좀더 진전되면 소통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콘크리트를 드릴로 뚫고 나무를 심는가 하면, 쏟아지는 빗줄기를 피하지 않고 온 몸으로 맞으며, 관객석을 환하게 밝힌 채 5분 동안 관객 한 명 한 명과 뚫어져라 눈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풍선으로 상징되는 '나만의 꿈'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공연은 마무리 된다.
진지한 문제의식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공연팀은 강력한 질문 던지기 대신 정답을 제시하는 방법을 택해 관객의 몰입도를 약화시킨다. 또 특정 배역이나 캐릭터 없이 배우 개개인의 현존성을 극대화하는 연극 만들기 방식이 되려 이 공연의 약점이 됐다. 배우들의 대사 중 일부가 일상성의 미학을 함축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나치게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 머물렀다.
작·구성·연출 이경성, 출연 오대석, 오의택, 나경민, 장수진, 성수연, 김승록, 제작 두산아트센터, 크리에이티브 바키(VaQi), 5월1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