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지난 22일 바그너 탄생일을 맞아 다채로운 바그너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음악회가 열렸다.
이날 한국바그너협회와 KBS교향악단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바그너 탄생 200주년 특별공연'을 공동주최했다. 연주회의 지휘봉은 독일 남바이에른 주립극장 부지휘자로 활동 중인 카이 뢰리히가 잡았다.
대표적 '바그너리안(바그너 음악 팬)'인 김민 서울대 음대 교수는 이날 객원악장을 맡아 바그너 탄생 기념의 의미를 더했다. 김 교수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에 유일한 한국 출신 바이올린 주자로 30년 동안 참가한 경력이 있다. 이 밖에 소프라노 캐서린 네이글스태드, 테너 마르코 옌취, 베이스 하성헌 등 걸출한 성악가들이 2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바그너를 기렸다.
지휘자 카이 뢰리히는 독일 출신 지휘자다운 박력 있는 지휘가 눈길을 끌었지만 섬세함은 다소 부족한 모습이었다. 관객 몰입도의 경우 1부보다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발퀴레> 1막 콘체르탄테가 연주된 2부에서 좀더 높았다. 역량있는 성악가들의 노래가 더해진 데다 곡 전체를 떠받치는 관현악 연주도 한결 집중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진행된 1부는 <리엔치> 서곡, <탄호이저> 서곡, 니벨룽의 반지 중 <신들의 황혼> 3막 '지그프리트의 죽음과 장송행진곡' 등으로 구성됐다. 지휘자는 공연 초반부터 춤을 추는 듯한 큰 몸짓으로 지휘하며 눈길을 끌었다.
카이 뢰이히는 <리엔치> 서곡에서 트럼펫 연주의 큰 포인트를 잡아내고, <탄호이저> 서곡과 <신들의 황혼> 3막 '지그프리트의 죽음과 장송행진곡'에서 웅장함과 장중함을 강조하는 등 음악의 큰 그림을 그려내는 데 무난히 성공했다. 그러나 속도감이 다소 빨랐기 때문인지 음악에 섬세한 깊이까지 더하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트럼펫과 트롬본 등 금관파트는 바그너 특유의 웅장한 소리크기를 감당하기에는 다소 미흡했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고질적인 문제이긴 하나 바그너 음악이 금관의 강력한 소리에서 특별한 매력을 뿜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히도 현악파트의 진중한 연주가 그 아쉬움을 일부 상쇄했다. 특히 2부 연주의 경우 콘트라베이스 파트가 깊은 무게감과 리듬감으로 악극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조성했다. 현악기의 다양한 소리를 포용하는 듯한 비올라 파트도 진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날의 일등공신은 소프라노 캐서린 네이글스태드였다. 2부의 <발퀴레> 1막 콘체르탄테에서 지글린데 역으로 등장한 그녀는 탁월한 기량으로 바그너 음악에 대한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독일 오페라극장이 탁월한 오페라 가수에게 수여하는 타이틀인 '캄머쟁어린(Kammersängerin, 약자로 KS)'을 보유하고 있는 네이글스태드는 고음에서도 발성이 거의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녀린 목소리와 두터운 목소리를 순식간에 오고 가며 자유롭게 음색을 넘나드는 모습 역시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만하임 국립극장 전속가수로 활동 중인 하성헌도 함께 출연해 주목을 끌었다. 하성헌은 엄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지글린데를 억압하는 남편인 훈딩 역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목소리 외에 표정연기까지 외국가수들과 비교해 나무랄 데가 없었다.
바그너 전문가수인 마르코 옌취의 순수한 목소리는 불행을 딛고 일어나 지글린데를 구해내는 지그문트 역할과 적절히 어울렸다. 다만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악보 읽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 성량이 다소 부족한 점이 아쉬움을 남겼다.
(자료제공=KBS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