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한 나라의 영웅으로 사는 인생은 많지 않다. 고국이 아닌 타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런 삶을 그려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지난 24일에는 이런 장면을 접할 수 있었다. 거스 히딩크(68) 감독을 봤기 때문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남긴 업적은 대단하고도 뚜렷하다. '월드컵 4위'라는 구체적인 성과와 함께 자신감을 한국에 남겼다. 여전히 그의 향기는 진하다. 대한민국 명예시민인 그는 항상 이목을 끈다.
◇'K리그 올스타전 with 박지성' 경기를 하루 앞둔 24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 인터뷰실에서 (왼쪽부터)이근호, 황선홍 포항스틸러스 감독,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박지성이 공식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News1
히딩크 감독이 한국에 나타나면 그날 뉴스의 중심은 그의 발언이다. 꼭 한국에 오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그가 한국을 떠난 뒤 거둔 성과들과 최근 네덜란드 대표팀을 다시 맡는다는 소식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국내 언론은 히딩크 감독의 말을 주시한다. 축구가 어려울 때 더 그렇다. 자연스레 이 과정에서 히딩크 감독은 친근한 할아버지에서 한 명의 영웅으로 올라선다. 그때마다 세계적인 명장이 한국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낄수 있다.
히딩크 감독은 24일 두 차례의 큰 행사를 치렀다. 오전에는 덕성여대에서 '히딩크 드림필드 풋살구장' 개장식과 시범경기에 참석했다. 지난해 10월 덕성여대와 히딩크 재단이 체결한 업무 협약에 따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풋살 구장 조성에 나섰다.
같은 날 오후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올스타전을 앞두고 사전 기자회견을 했다. 그의 옆에는 2002 한일월드컵 4강을 도운 황선홍 포항스틸러스 감독과 박지성이 함께했다. 최근 브라질월드컵에서 활약한 이근호도 K리그 대표 선수격으로 자리를 빛냈다.
히딩크 감독은 두 번 모두 한국 축구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 한국 축구가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가 비판의 중심에 있으며 감독이 공석인 대표팀을 포함해 전반적으로 축구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언론은 해답의 실마리가 히딩크 감독에게 있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이에 히딩크 감독은 '기본'을 핵심으로 대답했다. 그는 애제자 박지성의 성공 사례까지 예를 들며 헌신과 기본을 강조했다. 아쉽게도 여론을 휘어잡을 큰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더욱 깊어진 자신의 축구 철학을 토대로 줄곧 강조해온 것을 또 꺼내 들었다.
◇지난 24일 'K리그 올스타전 with 박지성' 경기를 하루 앞두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헌신과 기본'을 강조하고 있는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News1
4강 신화 직후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담은 책이 서점을 뒤덮은 적이 있다. 그때 히딩크 감독의 성공 요인으로는 기본을 중시한 고집이 꼽혔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선수들의 기술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언론의 물음에 오히려 축구의 가장 기본이 되는 체력을 끌어올리는 행동으로 답했다. '오대영'이라는 비웃음이 따라붙어도 히딩크 감독은 축구 선수가 움직이는데 가장 기본인 체력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는 2002 한일월드컵 매 경기 순간순간 나온 변화무쌍한 전술의 토대가 됐다.
히딩크 감독은 지금도 12년 전과 같은 '축구론'을 한국에 설명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깊이만 더해졌을 뿐 그 알맹이는 여전하다. 그는 "감동적인 헌신이 기본"이라고 되풀이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도 이 단어는 빠지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히딩크 감독 이전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갔다. 4강 신화를 뒤에서 도와준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다시 그 자리에 복귀했다. 어쩌면 한국 축구는 매번 같은 맥락의 철학을 전하는 히딩크 감독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히딩크 감독의 축구 철학을 지금이라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기본에 헌신하는 자세가 나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