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날짜까지 기억난다. 1996년 1월27일이었다. 올 시즌 서울 삼성 지휘봉을 잡은 이상민 감독은 까까머리였다. 군 복무를 대신해 상무에서 뛰고 있었다.
그날 '산소 같은 남자' 이상민은 13득점 17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올렸다. 당시에는 미국 프로농구(NBA)에서나 볼 수 있었던 트리플더블이었다.
당시 선수 이상민은 경기 종료를 앞두고 수건을 뒤집어쓰며 벤치로 물러났다. 장내 아나운서는 "이상민 선수가 트리플더블을 달성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대기록 작성을 관중에게 알렸다. 그때 관중석에서 역사적인 경기를 직접 체험한 소년과, 소년의 손을 꼭 잡고 신도림에서 잠실까지 지하철을 타고 농구장을 다닌 <응답하라 1994>의 '나정이'같은 막내 고모는 함께 기쁨을 나눴다.
필자의 추억이다.
훗날 허재 KCC 감독이 1985년 농구대잔치에서 세운 트리플더블(26득점·17리바운드·13어시스트)이 최초라고 밝혀지기 전까지 그날 이상민 감독의 기록이 한국 농구 역사상 최초의 트리플더블로 알려졌다.
이상민 감독의 트리플더블 이후 18년이 흘렀다. 과거 농구전문가를 자처하며 길거리농구를 하던 동네 형들은 "한 10년 뒤쯤엔 가드가 190cm 정도는 될 것"이라며 "덩크슛도 분명 많아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실제 요즘 프로농구는 이와 비슷하다. 보통 코트에서 가장 작은 선수가 포인트가드를 맞는데 이들이 180cm 정도 되면 요즘은 작은 느낌이다. 김선형(SK)처럼 186cm는 돼야 경쟁력 있어 보인다.
농구대잔치 시절과 비교하면 '하드웨어'는 확실히 좋아졌다. 문제는 내용물이다. 얼마나 농구의 내적 발전이 있었느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쉽사리 답하기 힘들다.
농구계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에 프로농구가 탄생했다.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말로 농구계는 실업팀들과 진통 끝에 빗장을 풀었다. 그러면서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무공 같은 탄력'으로 수식되던 외국인 선수들의 덩크슛도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됐다. 국내 선수들의 화려한 덩크슛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술로 자리 잡았다. 어느 정도는 90년대 후반 동네 형들이 하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프로농구 초반 '중립지역'으로 분류됐던 서울도 연고 팀이 생겼다. 서울 삼성과 서울 SK가 탄생하며 큰 시장성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가 아직 서울에 1팀(FC서울)밖에 없는 것과 비교하면 산업적인 측면에서 판을 펼친 것도 빨랐다.
그럼에도 프로농구 인기는 예전 명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관중 수는 늘었다고 하는데 체감지수는 높지 않다. 여전히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우선시되는 분야는 아니다. 이런 현상을 놓고 단순히 즐길 거리가 많아졌다고 변명하기엔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가장 최근엔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광을 못 살린 것이 아쉬움 중에 하나다. 아직도 당시 대표팀 스태프들에게 돌아가야 할 포상금이 지급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에게만 일정 금액이 전달됐다.
넓게 시선을 돌리면 '일방통행'을 고집하는 프로농구연맹(KBL) 수뇌부의 불통도 눈에 띈다. 농구 금메달의 영광을 어떻게 이어가야할지 고심해도 모자랄 상황에 이들은 다음 시즌 외국인 선수 2명 출전을 밀어붙이고 있다. 현장 감독들의 여론은 부정적이며 무엇보다 그 아래에 있는 아마추어 농구부 지도자들은 난감해 하고 있다.
올 시즌 전 미디어데이에서 KBL 수장인 김영기 총재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도 하지 못했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인터넷 생중계를 타며 안방에 있는 농구팬들에게 전해졌다.
◇김영기 프로농구연맹(KBL) 총재(왼쪽)와 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 (사진=KBL)
농구를 오래 본 팬들 대부분은 이런 방안을 비판하고 있다. 안 그래도 각종 프로농구 기록을 살펴보면 외국인 선수가 모든 분야에서 상위 그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끔 문태영(모비스)과 문태종(LG)이 이름을 보이지만 이들은 귀화 혼혈선수다. 한국인이고 한국 농구선수가 맞지만 한국 농구 시스템이 키운 선수는 아니다.
비시즌에 이런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결국 실질적인 관중 수도 줄었다. 한창 '금메달 효과'를 기대했던 농구팬들은 실망감이 크다.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을 홈으로 쓰는 전자랜드는 지난 2일이 돼서야 모비스와 경기를 치렀다. 인천아시안게임 때문에 경기장을 쓸 수 없었다. 그럼에도 홈 개막전에는 9094명의 관중이 들어찼다. 인천 연고 개막전 최다관중 기록을 세웠다. 농구 금메달 역사 현장로서의 뿌듯함과 새 시즌 희망을 팬들의 모습에서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10일이 지난 12일에는 3682명의 관중이 왔다. 홈 개막전이자 일요일에 열린 경기와 평일 저녁 경기의 흥행 차이라고 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 차이는 적지 않다.
KBL은 최근 D리그를 만들며 허리띠를 졸라맸다. 추가 예산 집행 없이 기존의 체육진흥투표권(스포츠토토) 수익으로 받는 금액을 쪼개 D리그를 만들었다. 국내 농구 선수의 전체 판을 키우고 실질적인 2군 리그를 활성화해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더 의문이 생긴다. D리그를 통한 국내 선수들의 가능성 확대와 외국인 선수 2명 출전은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KBL 고위층 혹은 김영기 총재는 "단신 외국인 선수를 활용해 득점력을 끌어올려야 인기가 올라간다. 볼거리가 많아져야 팬들이 즐겁다"는 식으로 외국인 선수 확대에 대한 근거를 댔다. 그러나 현장과 동떨어진 행정을 추진하며 소통조차 하지 않는 사이 프로농구는 인천아시안게임의 영광에서 급속히 멀어지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지난 2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에 체육관을 가득 메운 9094명의 관중들. (사진=KBL)
'헛스윙' 3번이면 삼진 아웃인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 이어 이번에 2번째 헛스윙을 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키 빼고는 다 작아진 것은 아닐까.
차라리 KBL 측에서 허심탄회하게 팬 투표를 거쳐 일정부분 자신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팬들의 의견을 반영하면 어떨까 싶다.
크게 어렵지도 않다. KBL은 이미 몇 차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을 활용한 올스타 팬투표 혹은 미디어데이 즉석 질문을 받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농구를 사랑하는 팬들의 의견을 모아 진짜 여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면 된다.
한국 농구계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