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지난 5일 부산 KT와 울산 모비스의 맞대결에서 종료 16.8초를 남기고 KT의 찰스 로드(30·203cm)가 5반칙 퇴장을 당했다.
하지만 부산 사직실내체육관을 가득 채운 관중들과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한 KT의 전창진 감독까지 모두 그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2010-2011 시즌 KT 유니폼을 입으며 국내 프로농구에 나타난 로드가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는 외국인 선수라는 게 이 장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찰스 로드(왼쪽). (사진=KBL)
이날 로드는 13득점 9리바운드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72-62 완승에 기여했다. 6위였던 KT는 로드의 활약에 힘입어 5위로 올라감과 동시에 1위 모비스를 2위로 끌어내렸다.
로드는 리바운드 1개만 추가했으면 '트리플더블'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KT의 슈터 조성민은 일부러 경기 막판 2번째 자유투를 놓치며 로드에게 리바운드 기회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비스의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리바운드를 따내며 로드의 대기록 달성은 물거품이 됐다.
로드는 이미 지난 3일 서울 삼성과 경기에서 트리플더블(21점·14리바운드·10블록)을 써낸 상태였다. 이는 지난 2005년 크리스 랭(당시 SK) 이후 10년 만에 블록슛으로 트리플더블을 달성한 선수로 기록됐다.
프로농구연맹(KBL) 역사 전체로 봐도 블록슛으로 트리플더블을 세운 것은 역대 4번째에 해당하는 드문 일이었다. 게다가 로드가 이날 모비스전에서 리바운드 1개만 추가했다면 2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을 작성하는 대기록을 이룰 수도 있었다.
◇전창진 감독(오른쪽)과 로드. (사진=KBL)
KBL 4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 로드는 유독 팬이 많은 선수로 꼽힌다. 그 이유로는 팀 성적이나 경기 흐름에 크게 개의치 않고 언제나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런 로드가 농구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에 비유되기도 했다. 강백호와 비슷한 머리스타일, 익살스러운 표정, 고무공 같은 탄력은 강백호의 거친 매력과 맞아떨어졌다.
수비가 앞에 있든 없든 일단 탄력을 받으면 로드는 과감하게 덩크슛을 시도했다. 그 이면에는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서라면 온갖 인상을 쓰면서도 코트에 나뒹구는 모습도 있었다. 이런 모습에서 팬들은 외국인 선수 이상의 열정을 느끼며 그에게 환호했다.
이 때문에 간혹 로드가 전창진 감독에게 큰 꾸지람을 듣거나 "자기만 생각한다"는 공개적인 핀잔을 들어도 팬들만큼은 로드를 바라보는 눈길이 따뜻했다.
2011-2012 시즌 때의 일화다. KT와 안양 KGC인삼공사의 경기 중 전창진 감독이 로드에게 "그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xx"라고 말하는 것이 중계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며칠 뒤에는 로드를 퇴출시키겠다는 뜻을 언론에 밝혔다.
그러자 로드를 지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KT 홈페이지를 비롯한 몇몇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로드의 퇴출을 반대하는 항의성 글이 쏟아졌다. 일부는 "KT 경기장을 찾지 않겠다"는 강경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팬들의 사랑을 확인했지만 로드는 2011-2012 시즌을 끝으로 KBL 무대를 떠났다. 그리고 딱 1년 후인 2013-2014 시즌 인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으며 다시 KBL 무대를 돌아왔다. 떠날 때보다 좀더 성숙한 모습이었다.
전자랜드 구단 관계자는 "로드가 생각보다 매우 성실하고 여리다. 유도훈 감독님이 포웰처럼 슛 연습 좀 하라고 지적하자 바로 경기 전부터 나와 슛 연습에 임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성격이 밝다. 거칠고 다소 투박한 플레이와는 다르게 의외로 섬세한 성격"이라고 전한 바 있다.
실제 로드는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와도 질문이 돌아가기 전까지 매우 얌전하다.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가 인터뷰실에 들어오면서 적절한 애드리브를 하고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것과 비교하면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질문이 로드에게 가면 그는 매우 엉뚱한 대답을 하기도 해 인터뷰실을 웃음바다로 만든다. 가끔은 자신만의 힙합 패션을 잘 차려입고 나타난 눈길을 끌기도 한다.
◇경기 종료 후 로드의 모습. (사진=로드 페이스북)
로드는 2010-2011 시즌 KT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이렇다 할 팀 성적은 못 올리고 있다. 우승 당시에도 그는 제스퍼 존슨에 이어 팀 내 2번째 외국인 선수였다.
대학 시절도 순탄치 않았다. 뛰어난 운동능력으로 미국프로농구(NBA)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나 발목을 심하게 다쳐 4학년을 통째로 날린 그를 지명하는 NBA 구단은 없었다. 이때 로드를 주목한 게 전창진 감독이고 그는 2010-2011 KBL 트라이아웃 2라운드 제일 마지막 순서로 KT 유니폼을 입었다. 다른 구단은 이런 전창진 감독의 선택에 의아해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흙 속의 진주'였다.
여전히 로드가 소속팀에 어느 정도를 기여하고 얼마나 효율적인 선수인지는 똑 부러지게 측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떠나 관중들과 여론의 따스한 눈길을 받는 선수인 것만은 확실하다. 항상 KBL의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로드가 빠지지 않고 있으며 부산 홈팬들을 비롯한 많은 농구팬은 그의 플레이에 환호한다.
한편 로드는 오는 10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프로농구 올스타전에서 덩크슛 대회에 출전하다. 로드는 2011-2012 시즌 올스타전에서 덩크슛 대회 우승을 차지한 뒤 팀 동료 조성민과 합동 세리머니를 펼친 바 있다. 이번 덩크슛 대회에서 로드의 경쟁자로는 앤서니 리처드슨(동부), 찰스 가르시아(오리온스), 리오 라이온스(삼성)가 있다.
◇덩크슛 하는 로드. (사진=KB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