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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사각지대, 육성선수)②'번외지명'으로 꿈 팔고..연봉은 5년째 1800만원
입력 : 2015-01-30 오전 11:36:47
[뉴스토마토 이준혁·임정혁기자]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로 불리는 야구 외의 다른 프로스포츠계에도 '신고선수'처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선수층은 존재한다. '어차피 실력이 곧 돈'이라는 논리가 지배하는 냉혹한 프로 리그라지만, 이들에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꽤 짙고도 넓다. 
 
◇연봉 2000만원 받고 사라지는 선수들
 
많은 이들이 축구대표팀의 화려한 경기에 열광한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야구의 신고선수와 마찬가지로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층이 있다. 이른바 '번외지명' 선수다.
 
번외지명 선수는 드래프트 6순위까지의 선택에서 지명받지 못한 선수를 구단이 지명하는 것을 뜻한다. 계약금이 없으며 계약기간은 1년이다.
 
번외지명 선수의 최소 연봉은 2000만원이다. 1순위 선발 선수가 최소 5000만원을 받고 계약기간도 3~5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열악하기 그지 없는 수준이다. 그렇지만2006년 K리그 드래프트 제도 부활 이후 12명이었던 번외 지명 선수는 매년 늘어났다. 각 구단이 번외지명을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2006~2015 K리그 드래프트에서 나온 번외지명 선수 수 변화. (정리=임정혁기자)
 
구단 운영비를 줄이려 허리띠를 졸라맨 구단들이 이미 대어급으로 꼽히는 선수들은 자유계약 형태로 선발하고 나머지 선수들은 최소의 돈으로 깎아 데려가는 것이다.
 
지난해 드래프트에서는 참가 선수 중 16%만이 프로 선수가 됐고, 그 안에서도 연봉 2000만원을 받는 선수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대학 감독들은 "제자들 보기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장을 찾았던 학부모 중 일부는 눈물을 훔치며 집으로 돌아갔다.
 
◇'재취업' 두려움..지명 자체도 감지덕지
 
번외지명 선수의 삶은 불안하다. 여론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은 대부분 1년 정도 팀에서 뛰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김기동(U-22대표 코치·1991년 포항 번외지명), 강수일(현 포항·2007년 인천 번외지명), 배기종(제주·2006년 대전 번외지명), 장학영(부산·2004년 성남 번외지명) 등 '연습생 신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번외지명 선수 수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는 수준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번외지명이라도 프로구단에 뽑히려는 게 모든 선수의 소원이다. 최소한으로 아주 적은 돈만 받아도 경험을 쌓으려는 게 선수들 마음"이라며 "실력이 다소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선수들도 최소한 프로구단 어디에서 뛰었다는 이름값이라도 챙겨가야 나가서 유소년 지도자나 축구 관련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서 더 악착같이 몇 년이라도 버틴다"고 설명했다.
 
한 대학 축구팀 감독은 "매년 프로구단에서 뽑아가는 선수들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아예 어중간한 실력의 선수들은 다른 나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도 한다"며 "축구는 그나마 다른 스포츠와 달리 해외로 나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번외지명마저도 선수들 입장에서는 감지덕지다.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과거 한 아마추어 선수는 "돈보다 경험이 중요하고 어떻게든 프로 무대에서 뛰는 게 좋지만 그마저도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으면 적은 돈을 받으면서 언제까지고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라며 "1년 정도 되면 알아서 나가고 그사이 여러 취업 자리를 알아보다 아예 축구와 관련 없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리셉션홀에서 열린 K리그 2015 신인 드래프트 행사 모습. ⓒNews1
 
여건이 어려운 번외지명 선수도 마다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재취업'에 대한 두려움이다. 학원 스포츠가 대세인 풍토에서 아직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하는 분위기는 자리잡지 않았다.
 
그래서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들은 늘 프로 무대 주변을 전전하다 사회 적응에 실패한다. 이따금 극단적인 선택을 해 승부조작이나 '검은 돈'의 유혹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과거 야구와 축구계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승부조작 사건에서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한 선수 출신 인사가 브로커 구실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수련선수' 없어지고, 부상 선수에 밀리기도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로 꼽히는 농구도 스타급 선수가 아닌 이상 극심한 생활고와 이에 따른 위험에 노출돼 있다.
 
프로농구는 2013년까지 열렸던 2군 드래프트를 폐지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탈락한 선수들은 운이 좋으면 초·중·고 코치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드래프트 당일에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는 신세로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뀐다. 한기범 선수는 "농구를 그만두고 안 좋은 일을 하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며 "특히 농구했던 친구들은 키가 커서 더욱 눈에 띈다"고 말했다.
 
제도적으로 프로농구에 '수련선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프로농구연맹(KBL)은 수련선수제도를 도입해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10개 구단이 총 49명의 수련선수를 뽑도록 장려했다.
 
하지만 김수환(전 신세계), 신제록(전 KT&G), 이중원(전 KCC), 박진수(전자랜드) 정도를 제외하면 수련선수 출신으로 1군 무대를 제대로 밟은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전히 왕성하게 코트를 누비고 있는 주희정(SK)이 프로농구의 대표적인 '연습생 신화'로 꼽히지만 이는 수련선수 제도가 생기기 이전인 1997년의 일이며 집안 사정상 일찍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에 입단한 독특한 사례다.
 
KBL은 2008-2009시즌 2군 제도를 도입하며 사실상 수련선수라는 용어를 없앴다. 기존 수련선수를 2군 선수로 통일했다.
 
이어 올해에는 2군리그를 표방하며 'D리그'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1군 선수 최저 연봉을 기존 38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깎고 대신 기존 수련선수와 마찬가지인 2군 선수들의 최소 연봉을 3000만원까지 크게 인상했다. 그전까지 이들의 연봉은 대략 2200만원 안팎이었다.
 
표면적으로는 2군 선수들의 처우가 나아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KBL은 올 시즌 각 구단의 선수 총 연봉(샐러리캡)을 22억원에서 1억원만 올린 23억원으로 확정했다. 이 때문에 각 구단이 선수 연봉을 조절하며 실질적인 구단 운영을 하기에는 오히려 융통성이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맺는 2군 선수들은 사실상 내년을 기약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이들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D리그가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는 2군 본연의 목적보다는 1군에서 부상당한 선수들이 재활 이후 복귀 전에 잠깐 거쳐 가는 무대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실업팀을 창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로에 지명되지 못한 선수들에게 최소한의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을 동호회 농구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창출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여자농구는 실업팀이 있어서 고교 졸업 선수나 프로 은퇴 선수가 직업 활동을 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10일 탄생한 KBL D리그 개막식 모습. (사진=KBL)
 
◇프로배구 연봉, 남자 1800·여자 1200만원
 
배구계는 최저연봉 금액이 문제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수련선수'의 최저보수를 시즌 전 이사회에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구단이 수련선수의 연봉과 계약 조건을 선수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정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여기까진 긍정적이다.
 
다만 이들의 최저 보수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프로배구는 지난 5시즌 동안 아무런 변동없이 '남자부 1800만원·여자부 1200만원'의 최저 보수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프로배구 선수로서 품위 유지도 불가능할 수준이고, 평생을 운동에만 매달린 선수들이 꿈을 위해 받는 돈치고는 지나치게 적다. 
 
장달영 변호사(법무법인 에이펙스)는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 경영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최저보수를 올려야하다는 주장은 타당하다"면서 "그래도 최저보수가 명시돼 지정된다는 사실은 선수의 인권 문제를 놓고 생각하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메가 스포츠 이벤트'라 불리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이제 3년 뒤로 다가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체육계 전반에는 구단과 선수 계약에 따른 문제 외에도 크고 작은 인권침해 관련 각종 잡음이 여전히 있다. 선수와 구단의 문제든 협회와 연맹 차원의 제도든 스포츠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실상이라고 보기 부끄러운 일들이다.
 
대한체육회(KOC) 스포츠인 권익센터 상담실에 접수된 인권침해 행위 관련 상담 신고 건수는 2010년 496건에서 2013년 617건으로 24.4% 증가했다.
 
체육계와 선수들도 '관행'이라 여기며 참고 넘겼던 인권문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상담 내용도 각종 폭력은 물론 성(性)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경기현장 또한 곳곳의 브라운관에 나오는 스타 선수들에 열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제는 스타 선수 외에 아직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그 이면의 선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됐다. 그것이 스포츠산업 발전과 진정한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다. (계속)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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