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과 임신·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실업률의 증가 속도는 경제활동률과 고용률 증가 속도보다 빠르고,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은 15~54세 기혼여성 중 경력단절여성의 비중 축소에도 불구하고 1년 새 14.9%나 늘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그들의 입장에서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상은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기혼여성보다는 미혼여성, 미혼남성보다는 기혼남성, 사회초년생보다는 나이가 찬 경력자, 고(高)스펙보다는 어중간한 스펙의 지원자가 유리하다. 보통 이런 구직자들은 열악한 근로조건에 대한 수용도가 높고, 쉽게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두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기업의 규모가 작고 근로조건이 열악할수록, 업무가 단순하고 반복적일수록 위와 같은 인재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직종별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직능수준이 낮은 업종의 기업들은 인력을 충원하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임금수준 등 근로조건이 구직자의 기대와 맞지 않기 때문’을 꼽았다. 또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말 기업 인사담당자 2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25.6%는 ‘잉여스펙’을 이유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높은 연봉과 조건을 요구할 것 같다(70.6%·복수응답)’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기업들도 자신들이 제시하는 근로조건이 열악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조건을 수용하면서 오래 일할 사람을 찾다보니 낮은 임금과 긴 근로시간, 높은 업무강도를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의 청년과 임신·출산 여성들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불공정 거래관행과 경기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업에 무조건적인 근로조건 상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경영여건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를 감내해야 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청년실업과 여성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법은 정부의 노동개혁도, 임금체계 개편도 아니다. 최소한 기업이 실질생계비가 반영된 임금과 법정 근로시간만 보장해도 청년들이 합격과 동시에 이직을 고민하는 상황, 임신·출산 여성들이 무리한 업무강도에 지쳐 일을 그만두는 상황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능력을 기준으로 채용하게 되지 않을까. 현재 실업난은 ‘구직자 눈높이’의 문제도, ‘기득권 노조’의 문제도 아니다. 근로조건 수용도를 채용의 기준으로 삼는 고용관행의 문제다.
김지영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