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우성문기자] 남중국해를 중국의 영유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나왔다. 필리핀 정부가 중재를 요청한지 3년 반 만에 PCA가 필리핀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번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고 미국은 중국이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등 두 나라의 패권 다툼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PCA “남중국해, 중국 영토로 인정 못 해”
PCA의 판결이 나온 후 필리핀 마닐라에서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PCA는 중국과 필리핀 간 남중국해 영유권과 관련해 중국이 남중국해 대부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중국이 조성한 인공섬들에 대해서도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보할 수 있는 ‘섬’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으며 중국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남해구단선'과 관련해서도 영해 영역을 구분 짓는 해양 지형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오히려 PCA는 “중국이 인공섬을 건설해 필리핀의 어로와 석유 탐사를 방해해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그동안 역사적 근거를 들며 남해구단선 안에 있는 영토가 중국의 영토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 350만제곱킬로미터에 해당하는 남중국해 해역의 90%가 이 남해구단선 안에 포함된다. 역사적 서적들에 따르면 2000년전 한나라 시대 때부터 중국인이 남중국해를 발견해 항해를 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중국은 이곳에 인공섬을 만들며 꾸준히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 대만, 말레이시아 등 남중국해에 인접해있는 국가들 역시 모두 역사적 기록을 토대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결국 2013년 1월 필리핀 정부는 PCA에 중재를 요청했고 PCA는 완전하게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중국과 미국, 반응 극명하게 엇갈려
그러나 발표가 나오자마자 중국에서는 이번 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즉각 반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남중국해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토"라면서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주권과 해양권익은 중재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은 중재판결에 근거한 그 어떤 주장이나 행동도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처음부터 중재 판결을 인정한 적이 없고 판결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신화통신 역시 "서방국가들이 중국의 발전을 막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서 "중국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문제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판결이 법적 효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중국이 이번 판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중국과 필리핀 양국이 모두 의무를 준수하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면서 "이번 판결은 구속력이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코너에 몰린 중국은 국제법을 어길 것인지 아닐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본 역시 미국을 지지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해당 국가들은 PCA의 판단에 따를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일본 언론들 역시 "중국은 자국에 불리하더라도 국제법을 수용해야만 한다"고 전했다.
'판결 완패' 중국의 향후 선택은?
다만 이번 판결 이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는 만큼 판결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CNN은 전했다.
CNN뿐 아니라 다수의 언론 역시 중국이 이번 판결에 승복하고 남중국해에서 떠날 가능성은 사실상 '0'이라고 지적했다.
필리핀 역시 재판에서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중국에 판결 수용을 압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에스텔리토 멘도사 전 필리핀 법무차관은 이번 결정에 대해 "사실상 중국과 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판결 수용을 압박하게 된다면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며 군사 충돌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CNN은 두 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공식적으로는 이번 판결을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굽히고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베이스 건설 등을 다소 줄이는 것이다. 또한 다른 국가들이 남중국해에서 항해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간섭을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중국이 국제 사회의 질서에 사실상 따르기로 순응한 것으로 큰 마찰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CNN은 중국이 오히려 이 지역의 군사 베이스를 강화하는 등 오히려 갈등을 높여나갈 가능성이 더 크다고 꼬집었다.
이미 시 주석은 판결을 앞두고 인민해방군에 전투태세를 명령하는 등 굽히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고 미국 역시 남중국해 분쟁지역 주변에 항공모함을 배치해 놓은 상태기 때문이다.
센 딩글리 푸단대학 교수는 "중국이 만약 이번 판결을 완전히 무시한다면 이른 시일 내에 매우 쉽게 물리적 충돌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성문 기자 suw1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