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여기 세 후보가 있다. 후보 A는 사생활이 복잡하고 줄담배를 피우며 술을 하루에 6~10병을 마신다. 후보 B는 대학 시절 마약에 손을 댔고 우울증 증세가 있으며 무엇보다 공직에서 해임된 전력도 있다. 후보 C는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금욕주의자인 데다 전쟁에 나가 무공훈장까지 받았다. 당신은 이 세 명의 후보 중에 누구를 찍을 것인가? 아니, 누구를 찍었는가?
6·13 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 야당의 참패로 끝났다. 예견된 결과였다. 수많은 여론조사는 그런, 혹은 그 이상의 결과를 예측했다. 여론조사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면 믿을 수 없다거나 잘못된 조사라며 애써 무시했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선거와 여론조사는 늘 한 묶음이었고, 여론조사를 둘러싼 논란은 역사가 깊다. 과학자나 전문가들도 정확한 여론을 짚어내고 반영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여론조사는 과학적인가? 20세기 초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여론조사로 인기를 끌었다. 19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엽서를 이용한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했다. 우드로 윌슨의 당선을 예측했고, 결과는 정확했다. 20년 후 1936년 선거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알프레드 랜던 후보의 압승을 예견했다. 결과는 루스벨트의 승리였다.
이때 루스벨트의 승리를 정확하게 예측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갤럽이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무려 1000만 명에게 엽서를 보내 회수하는 방식이었고, 갤럽은 불과 5000명을 대상으로 누구를 지지하는지 물었다. 1000만 명 대 5000명의 대결이었지만, 결과는 5000명의 승리였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표본인구 개념을 도입한 것이 승리의 비결이었다. 이 일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쇠락했고 갤럽은 부상했다. 과학적인 여론조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후 ‘과학적 여론조사’는 부침을 반복했다. 자주,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번 미국 대선이 대표적이다. 대부분 여론조사는 힐러리 클린턴의 우세였다. 잘 알다시피 결과는 트럼프의 승리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구글의 빅데이터 분석이다. 여론조사와 달리 구글의 빅데이터로 키워드를 검색해 보니 선거운동 기간 트럼프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모 후보 측에서 “여론조사에서는 뒤지지만, 네이버 트렌드와 빅데이터는 압승을 예고하고 있다”라는 주장을 펼쳐 잠시 회자했다. 결과는 다 아는 바와 같다.
여론조사만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에 대한 불신을 주장하는 학자도 적지 않다. 영국의 과학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지난 2010년 ‘선거의 모순’과 관련된 논문을 실었다. 각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최다득표자 당선 방식’의 수학적 오류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이를테면 지지율 30%대의 정당이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이런 오류에 해당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장자인 케네스 애로는 이미 1950년대 선거가 항상 최선의 선택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애로의 불가능성 정리’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민주주의 대전제인 합리적 의사 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만장일치의 원칙, 이행성의 원칙 등을 바탕으로 다수결의 의사 결정이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물론 제도가 성숙하지 못한 1950년대의 일이긴 하다.
선거와 여론조사에 대한 이런저런 논란에도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을 넘어 가장 강력한 버팀목이다. 유권자들은 표로 정치적 견해를 표출하고 위정자를 심판한다. ‘민심’은 빅데이터와 과학적 분석 기법으로 정확하게 수치화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네거티브 공세와 악성 소문이 때로는 민심을 흔들기도 하지만, 그보다 강력한 이슈가 발생하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번 선거가 특히 그랬다.
결국, 민심을 읽고 따라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제도를 탓하고 여론조사의 신빙성을 의심할 시간에 현재의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민심은 어떤 정당,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읽어야 한다. 물론 유권자들도 경계해야 한다. 내가 들은 것만, 아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확증편향이 대표적이다. 서두의 질문은 그것을 경고하는 좋은 사례다. 다행스러운 점은 유권자들이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A, B, C 세 명의 후보는 누구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A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B는 윈스턴 처질, C는 아돌프 히틀러였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