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혈세를 쏟아부은 자동차·조선산업 등 기간산업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위원회의 구조조정 기능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용쇼크 우려와 강성노조 눈치보기 등으로 메스를 제대로 못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구나 제 목소리 못내는 금융위의 구조조정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별관 회의 여파로 사라진 구조조정 정책
10일 금융권과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강도높은 산업구조조정 역할에 사실상 손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때만 하더라도 두달에 한번 꼴로 기업구조조정 정책을 쏟아냈던 '구조조정지원팀'은 정권 교체와 함께 관련 정책을 단 한건도 내지 않았다.
지난해 초 금융위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가 있을 때마다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방안', '해운업 금융지원 방안' 등 기업구조조정 정책을 적극 추진해왔다.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경기민감업종을 지정하는 등 기업구조개선 방안에 주력했다.
당시에도 구조조정 시기가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 상황이라, 임종룡 전 위원장은 대우조선·한진해운·현대상선 등 굵직한 기업구조조정 추진에 총대를 멨다. 그러나 서별관회의 사태로 관치금융이 도마에 오르면서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들이 제기됐고,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자취를 감췄다.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 앞. 사진/ 뉴시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취임하자 구조조정 정책은 눈에 띌 정도로 줄었다. 최종구 위원장은 지난해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구조조정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주도해야 한다"며 구조조정과 거리를 뒀다. 금융위 조직도 금융소비자 지원을 중심으로 개편했다.
과거 논란이 된 관치금융의 트라우마로 구조조정 기능이 약화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정부의 친노동정책과 고용쇼크를 우려해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자유한국당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니 금융위도 구조조정 기능을 많이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최근 산업 구조조정이 대두되는 만큼 해당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자동차·조선산업의 업황은 악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내년 자동차·철강산업은 수요둔화와 보호무역 기조로 침체될 전망이다. 조선산업은 미약하게 회복하겠지만, 업황이 회복됐다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근본적인 개선책보다는 부품사 지원 등 부차적 문제에 주력하고 있다. 오히려 당국이 구조조정 기능을 손놓고, 시중은행 손목만 비튼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동차·조선업의 부조리한 임금구조를 고치는 게 우선인데, 정부는 시중은행의 금융지원만 바란다"고 전했다.
최종구 위원장은 최근 기자와의 만남에서 자동차 산업의 침체원인을 파업·고임금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대안으로는 애먼 은행들의 금융지원을 탓해 '모순된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 종로구 현대상선 본사 1층 로비에 현대상선 선박이 전시돼 있다. 사진/뉴시스
"차라리 구조조정 기능을 기재부로"
금융위·산업은행은 한국GM의 고질적인 문제가 강성노조와 고임금 때문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도 고용쇼크를 우려해 구조조정 발언을 못하는 실정이다.
김연학 서강대 교수는 "GM구조조정은 글로벌 추세인데 이를 정부와 산업은행이 모를리 없다"며 "(고용쇼크 등) 여론의 지탄을 우려해 어떻게든 형식적으로 협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GM본사는 트럼프 대통령 만류에도 미국 공장 2개를 폐쇄하고 있다"며 "GM이 해외공장 2개를 더 폐쇄하겠다고 하는데, 생산성이 낮은 국내 공장이 해당될 확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최근 현대상선도 자본잠식에 임박해 혈세 6조원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이를 대비하는 정부 정책과 입장발표은 전무하다.
금융위 구조조정지원팀 관계자는 "예전에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관련 정책을 많이 발표했지만 지금 현대상선이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다"라며 "해수부와 같이 현대상선을 어떻게 지원할지 다각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금융위가 한국GM·현대상선 등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산업은행을 비롯한 구조조정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과거 구조조정을 활발히 진행했던 산업은행이 최근 금융위의 규제·감독으로 원활히 구조조정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지원금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가 산업은행을 관리하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산업은행은 최근 구조조정 기능을 대폭 줄이고 벤처투자를 키우는 방향으로 조직개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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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 기자 g24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