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홍 기자]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가 혁신성장 지원과 관련해 경쟁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정책금융기관 역할을 개편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기관들의 '과열 경쟁·중복지원'이라는 문제가 제기되지만, 정부는 오히려 정책금융기관들의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일각에서는 기관의 고유 역할이 사라지고 '벤처·중소기업'의 쏠림 지원이 나온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혁신성장 기조에 무리하게 발 맞춘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5일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위와 기재부는 '정책금융기관 역할 개편방안'을 '혁신성장 지원을 통한 경쟁체제'로 가닥을 잡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혁신성장 지원 등) 역할을 중복시켜 두는 것이 정책금융기관 간에 경쟁이 된다"면서 "오히려 경쟁없이 기관마다 한 가지 업무만 하는 것은 (도태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는 정책금융기관들의 업무를 '혁신성장 지원'으로 중복시키면 두 가지 장점이 있다고 봤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소비자가 어느 기관의 상품이 더 좋은지 비교할 수 있게 된다"며 "또 정부는 지원 성과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정부는 혁신성장 지원실적을 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10개 정책금융기관(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무역보험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한국성장금융· 한국신용정보원· 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과 '정책금융협의회'를 설립하고 기관들의 자금지원 실적을 점검·분석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혁신성장 자금지원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혁신성장 인텔리전스 시스템'을 구축하고, 기관들의 세부적인 중복 지원을 예방하도록 했다. 또 산업은행 주도로 '혁신성장 정책금융 지원단'을 설립하고, 기관 실무자들 간에 정책 의견을 조율하기로 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지원단은 각 기관들의 실무직원들이 파견 오는 형태로 운영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책금융기관들의 업무가 혁신성장 지원에만 쏠리게 된다면, 기관의 설립목적이 퇴색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산업은행법· 수출입은행법· 기술보증기금법 등 각 정책금융기관마다 설립목적이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는 "법에 따르면 공공기관 마다 그 설립목적이 분명하다"며 "정부 입김에 취약한 기관들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금융 취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책금융의 과도한 경쟁시스템은 방만경영 등 모럴헤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례로 수조원 손실을 유발한 MB정권의 부실 해외자원개발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해외자원개발 자주개발률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하는 등 경쟁을 부추겼고, 이에 기관들은 부실투자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강행했다.
정책금융기관 직원들은 행정부처 및 기관장들의 밥그릇 싸움이 무리한 경쟁을 유발한다고 토로한다.
익명을 요구한 정책금융기관 직원 A씨는 "정책금융기관의 업무 중복은 수년간 지적된 사안으로 이미 해묵은 논쟁"이라면서 "그럼에도 아직까지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모든 기관들이 남의 떡을 탐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관과 기관장은 국회의 견제, 언론의 감시가 있으므로 모럴해저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한다"며 "이를 빌미로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다른 기관의 사업까지 확대하려고 계속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광화문 소재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사진/ 금융위
최홍 기자 g24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