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자신이 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익숙해져 반복적인 행동, 말투 등이 자연스레 나온다. 하지만 문득 숨을 쉬는 것처럼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낯익은 낯섦’이 찾아온 순간일 터. ‘블루아워’는 이러한 낯익은 낯섦을 마주한 한 여자의 성장 영화다. 그리고 영화를 연출한 타코타 유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 ‘블루아워’는 완벽하게 지친 CF 감독 스나다(카호 분)가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고향으로 자유로운 친구 기요우라(심은경 분)와 여행을 떠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심은경이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처음 찍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블루아워 심은경 카호. 사진/ 오드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블루아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프랑스에서 유래한 ‘블루아워’는 해가 뜨기 직전 혹은 해가 진 직후를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여명 혹은 황혼으로 부르는 시간대가 바로 블루아워다. 같은 시간대이지만 내포하는 의미에는 차이가 있다.
국내에선 여명이라 하면 밝은 미래를, 황혼이라 하면 인생의 후반부를 비유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블루아워는 프랑스 양치기에서 나온 말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개와 늑대 사이 시간’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프랑스 양치기 문화와 연관이 있다. 어스름이 깔린 하늘 아래 보이는 동물이 자신의 개인지 아님 자신을 해칠지 모를 늑대인지 알 수 없어서 나온 말이다. 그렇기에 블루아워는 낯익은 낯설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본 역시 프랑스와 비슷하다. 일본은 예부터 귀신, 도깨비, 요괴에 대한 문화가 문화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사람 혹은 살아 있는 것의 시간인 낮과 귀신, 도깨비 죽음의 시간이 밤에 대한 경계선인 황혼이 깔리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호한 존재에게 누구냐고 묻는 문화가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영화는 블루아워라는 시간대를 국내 정서가 아닌 일본, 혹은 프랑스 정서로 해당 시간대에 접근했다. 이에 관객이 ‘블루아워’의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접하는 감정은 ‘기괴함’이다. 어스름한 하늘 아래 펼쳐진 길을 뛰어다니는 아이가 홀로 부르는 노래에 ‘낯섦’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낯섦’도 잠시 다시 스나다의 평범한, 그래서 낯익은 일상의 모습이 그려진다. 낯익은 일상이 이어지다가도 갑작스레 낯선 분위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이 낯익은 것도, 낯선 것도 아닌 기괴함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영화 후반 비 오는 밤, 시골집에서 스나다가 자신의 오빠와 엄마를 마주한 순간 공포로 확장되기까지 한다.
하코타 유코 감독의 연출이 기괴함에 한 몫을 더한다. 흔히 생각하는 시골, 혹은 시골집에 대한 이미지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동반된 따뜻함이다. 스나다는 시골집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게 된 스나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 둘 떠올린다. 하지만 그 기억은 스나다에게 그리 좋은 추억이 아니다. 스나다의 어린 시절 유일하게 따뜻한 기억은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뿐이다. 하코타 유코 감독은 ‘블루아워’를 통해 익숙한 시골집 이미지가 아닌 불편하고 차가운 공간으로 바꿔놨다. 그렇기에 관객은 익숙하지 않은 낯선 느낌의 시골집을 마주하게 된다.
블루아워 심은경 카호. 사진/ 오드
성인 스나다의 모습은 일반적인 화면인 반면 어린 시절 스나다의 모습은 오래된 필름을 보는 듯한 거친 질감이다. 그러다 보니 스나다가 꿈, 혹은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이 여러 차례 교차됨에도 현실과 과거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스나다가 시골집을 찾게 되면서 서서히 경계선이 무너진다. 그러다 보니 영화 후반부는 과거와 현실, 그리고 꿈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캐릭터 역시도 모호한 감정선이 이어진다. 스나다는 매사 모순적인 말을 내뱉는다. ‘슬프지 않아서 슬프다’라는 식의 화법이다. 그러다 보니 벌어진 상황에 대해 스나다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 스나다의 말이 아닌 표정, 분위기를 읽어내야만 인물의 감정 상태를 느낄 수 있다. 더구나 별다른 사건없이 이야기가 평범하게 흘러간다. 스나다와 기요우라의 대화는 오랜 친구 사이에서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 받는 듯 일상적이다. 그러다 보니 스나다의 말이 아닌 분위기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영화의 말미에 스나다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할 수 없다.
‘블루아워’의 원제는 ‘블루아워에 내달리다’다. 하코타 유코 감독은 블루아워에 내던져진 스나다가 가슴 한 편에 안고 있는 콤플렉스나 결핍을 깨고 앞으로 내달리길 바라는 마음에 제목을 지었다고 했다. 다층적인 스나다의 감정을 거울삼아 자신의 콤플렉스나 결핍을 생각하기 위해선 블루아워라는 낯익은 낯섦이 주는 기괴함이라는 산을 넘고 인물의 모호한 감정선이라는 바다를 건너야만 깊은 위로와 여운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할 수 있다.
블루아워 심은경 카호. 사진/ 오드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