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사람마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에서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다르다.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는 명예를, 혹은 사랑, 가족을 최우선 순위에 두기도 한다. ‘우리집 똥멍청이’는 자신의 욕심 혹은 처한 상황 때문에 진짜 우선을 둬야 할 것을 두지 못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프랑스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내 정서와 그리 다르지 않기에 앙리 모헨(이반 아탈 분)과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남성이라면 깊이 공감할 영화다.
앙리 모헨은 25년 전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이다. 하지만 현재는 망작 제조기라고 불리며 오랜 슬럼프에 빠져 있다. 우울증과 술에 빠져 있는 아내 세실(샤를로뜨 갱스부르 분)과의 관계도, 네 명의 자식과의 관계도 삐걱거리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앙리는 자연스럽게 자식들 때문에 자신이 작품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부모라면 앙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극한에 몰리다 보면 가장의 무게에 짓눌리게 된다. 그리곤 자연스레 가장이 아닌 시절을 떠올리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장이 아니였다면’이라는 가정에 자신을 던져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한다. 앙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작품을 쓰려고 하지만 복작복작한 집구석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영감마저 떠나갈 판이라고 신세한탄을 한다.
우리집 똥멍청이. 사진/퍼스트런
그런 앙리에게 변화가 생긴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느닷없이 찾아와 집에 들어 앉아버린 강아지. 아들은 그런 강아지에게 똥멍청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아내 세실은 강아지를 키우는 걸 반대하지만 앙리는 똥멍청이가 그리 싫지 않다. 망작 제조기, 오랜 슬럼프로 패배자 같았던 자신과 달리 똥멍청이가 갖은 방법으로 내쫓으려는 세실과 네 자녀를 포기 시키고 되려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모습에 희망을 품는다. 더구나 과거 자신의 강아지를 물어 죽인 고약한 옆집 개마저 굴복시킨다. 이러한 모습에서 앙리는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자신이 똥멍청이를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우리집 똥멍청이. 사진/퍼스트런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현관문을 열면 반기는 건 강아지뿐이더라’는 말이 중년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신세한탄이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 자부하지만 나이가 먹고 남은 건 멀어진 자식과 자신을 귀찮아 하는 아내뿐이다. 모두가 나간 뒤 조용해진 집안에서 앙리는 똥멍청이에게 말을 건다. 아내가 개에게 말을 거냐고 타박을 하지만 그런 앙리는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건 똥멍청이뿐이라고 대꾸한다. 이러한 장면들은 중년 남성들이라면 너무나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영화 초반 중년 남성들이 공감을 얻을 만한 이야기라면 영화 말미에 이르러 중년 남성들이 다시금 가장 소중한 것, 우선 순위로 둬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만든다. 끊임없이 사건, 사고가 벌어지면 결국 앙리는 자신의 소원대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작품 집필을 끝내게 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앙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그제야 자각한다. 그리고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출판사 편집장에게 집필한 작품 원고를 넘기며 앙리는 자신의 심정을 쏟아낸다. 사람은 미련 하기에 없어져 봐야 그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앙리는 자신의 쓸쓸함,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깨닫게 된다. 그제야 우리 집의 진짜 똥멍청이가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황혼을 바라보는 중년들이 부모가 된 자식에게 ‘너 키울 때는 저렇게 예쁜 줄 몰랐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됐다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그런 이들이라면 ‘우리집 똥멍청이’는 머나먼 이국의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올 영화다.
우리집 똥멍청이. 사진/퍼스트런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