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5일 청와대 앞으로 통지문을 보내 한국이 공식 해명을 요청한 사안에 대해 신속하게 답하고 사과한 것은 남북관계가 여전히 신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북측이 파악한 대략적인 사건 경위는 통지문에 언급됐지만, 고인의 월북 정황이나 시신 발견 여부 등 추가 조사가 필요한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합동조사 실시나, 나아가 재발 방지를 위해 군 통신선 연결 등 대화 채널 복원을 통해 남북관계 재개에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명의 통지문을 보내 지난 21일 서해 소연평도 해상 어업지도선에 승선해 있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A씨가 실종된 뒤 22일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상에서 피살된 것으로 확인된 사건과 관련해 북한군이 파악한 사건 경위를 설명하고, "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 대해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라며 사과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북남 사이의 신뢰와 존중의 관계'가 허물어지지 않게 더욱 긴장하고 각성하며, 필요한 안전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언급한 '최근에 적게나마 쌓아온 관계'에 대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최근(한 달 이내) 친서를 주고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북측이 지난 6월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일방적으로 폭파하면서 단절된 줄 알았던 대화의 끈이 옅게나마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피격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25일 오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상에 정박되어 있다. 사진/뉴시스
북측은 통지문을 통해 북한군이 파악한 사건 경위를 나름대로 상세히 설명했지만, 군 당국이 발표한 내용과 비교하면 상당수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우선 군 당국은 다양하고 신뢰도 높은 첩보를 통해 A씨가 북한군에 귀순 의사를 밝힌 정황이 있다고 발표했지만, 북측의 통지문에는 이런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 또한 북측은 A씨에게 40~50미터 거리에서 10여발의 총탄을 사격했지만 이후 A씨가 부유물 위에 없었고 많은 양의 혈흔만 확인한 상태에서 A씨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해상 현지에서 소각했다고 해명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A씨 시신은 아직 해상을 표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정확한 사건 경위를 파악하고 A씨의 유해 수습 문제 등 해결을 위해서는 남북 군 당국 간 합동 조사가 필요할 전망이다. 또 한국이 재발 방지를 요청하고 북측도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답한 만큼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끊어진 군 통신선을 연결하거나 남북 간 고위급이나 실무급 군사회담을 개최하는 등 대화 채널 복원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한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난 6월 북측의 일방적인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 폭파로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다시 해빙을 맞을지도 주목된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북한전문 연구원은 24일(현지시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최소한의 유감만 표시해도 청와대는 이를 사과로 받아들이고 당장 북한과 관계를 다시 이어가려고 할 것"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이 정중한 사과를 확실히 표한 만큼, 야당의 공세에도 정부·여당의 대북 유화 정책이 다시 정당성을 얻을 전망이다.
지난해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2019 정책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왼)가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