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신태현 기자] 2020년 이후 최근 3년 간 30대그룹 계열사 4분의1이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자본잠식은 회사 적자가 커져 자기자본이 잠식된 상황을 말합니다. 이는 곧 유동성의 적신호로 해석됩니다. 또 부채비율의 경우 30대그룹 계열사 절반이 100%, 3곳 중 1곳은 200%가 넘었습니다. 코로나19에 경기 부진이 겹치면서 재계의 살림이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지적입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의 전경. 주요 기업체 건물들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 강타…30대그룹 계열사 4123곳 전수분석
코로나19는 2020년 1월부터 세계적으로 유행, 3년4개월 만인 올해 5월 팬데믹이 종료됐습니다. 이 기간 동안 세계 7억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700만명이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3400만명이 확진, 3만5000명이 죽었습니다. 세계는 감염을 막고자 국경을 폐쇄했습니다. 코로나19 발병지로 꼽힌 중국이 제조업 생산 차질을 빚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겹치면서 석유·철강 등 원자재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 악화와 실물경기 침체로 금융, 유통, 해운, 관광, 건설·부동산 등이 연쇄 타격을 받았습니다. 국내도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내수시장이 크게 위축됐습니다.
취재팀은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등을 바탕으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0대그룹에 포함된 적 있는 34개 대기업집단의 계열사 4123곳 경영상태를 전수분석했습니다. 특히 이들 대기업의 자금 상황 파악에 주력했습니다. 산업계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서둘러 문제점을 봉합하지 않을 경우 국가경제에 큰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입니다.
계열사 4곳 중 1곳은 자본잠식…2022년 기준 GS, 33곳으로 '최다'
공정위가 매년 발표하는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현황'에 따르면, 2020년~2022년 사이 30대그룹에 포함된 적이 있는 기업집단은 34곳입니다. 구체적으로 삼성을 필두로 △SK △현대자동차 △LG △포스코 △롯데 △한화 △GS △HD현대 △신세계 △KT △CJ △한진 △카카오 △LS △두산 △DL △HMM △중흥건설 △현대백화점 △부영 △네이버 △미래에셋 △S-Oil △금호아시아나 △하림 △영풍 △HDC △효성 △셀트리온 △KT&G △대우조선해양 △교보생명보험 △한국투자금융 등입니다.(2023년도 기업집단 지정현황 기준, 농협 제외)입니다.
34개 기업집단의 총 계열사 수를 연도별로 집계하면 2020년 1279곳, 2021년 1357곳, 2022년 1487곳입니다. 이들 계열사 가운데 4분의1에 해당하는 숫자가 자본잠식 상태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2020년 1279곳 중 312곳(24.39%) △2021년 1357곳 중 312곳(22.99%) △2022년 1487곳 중 353곳(23.74%)이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자본잠식은 자산 가운데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적은 상태를 말합니다.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누적 적자가 심각하다 보니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넣어놓은 투자금마저 까먹고 있는 겁니다. 사실상 파산 직전으로 봐도 무방한 상황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자본잠식에 빠진 계열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집단 10곳은 △롯데(28개) △CJ(27개) △한화·GS·미래에셋(19개) △카카오(17개) △효성(16개) △SK(15개) △KT(13개) △DL·HDC(12개) 등이었습니다. 2021년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간 계열사를 가장 많이 떠안았던 기업집단 10곳은 △GS(26개) △롯데(25개) △SK·CJ(22개) △한화(20개) △카카오·효성(18개) △미래에셋(17개) △DL·하림(14개) 등이었습니다. 2022년 기준 자본잠식에 빠진 계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 10곳은 △GS(33개) △한화(28개) △SK(27개) △CJ(25개) △롯데(24개) △카카오·미래에셋(21개) △중흥건설(19개)△효성(17개) △DL(13개)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30대그룹 계열사 절반은 부채비율 100% 이상…30%는 부채비율 200% 이상
(이미지=뉴스토마토)
경영건전성에 관한 지표 중엔 부채비율도 있습니다. 부채를 자본으로 나눠 100을 곱한 값입니다. 부채비율이 100%를 넘으면 회사가 자기자본을 모두 처분하더라도 빚을 다 갚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부채비율 100% 이상인 대기업집단 계열사는 △2020년 1279곳 중 641곳(50.12%) △2021년 1357곳 중 667곳(49.15%) △2022년 1487곳 중 737곳(49.56%)이었습니다.
먼저, 2020년 기준 부채비율이 100% 이상인 계열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집단 10곳은 △SK(65개) △CJ(49개) △롯데(42개) △한화·카카오·효성(37개) △GS(35개) △현대자동차(33개) △LG(32개) △LS(30개) 등이었습니다. 2021년 부채비율 100% 이상인 계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 10곳은 △SK(71개) △CJ(49개) △카카오(43개) △LG·롯데(40개) △한화(39개) △GS(37개) △효성(33개) △LS(31개) △현대자동차(30개) 등이었습니다. 2022년 부채비율 100% 이상 부실 계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 10곳은 △SK(79개) △카카오(48개) △CJ(44개) △GS(43개) △롯데(42개) △한화(37개) △LG(36개) △현대자동차·효성(34개) △LS(32개) 등이었습니다.
다만 부채비율이 100%를 넘었다는 것만을 근거로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것엔 이견도 있습니다. 금융업 등 일부 업종은 차입(레버리지)을 이용한 투자·경영을 하게 되는데, 이 경우 회사 부채비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선 '부채비율 200%'를 기준으로 경영건전성을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30대그룹 계열사 중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곳은 얼마나 될 지도 알아봤습니다. 부채비율 200% 이상인 계열사는 △2020년 1279곳 중 397곳(31.04%) △2021년 1357곳 중 407곳(29.99%) △2022년 1487곳 중 446곳(29.99%)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0대그룹 전체 계열사들 중 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곳은 절반가량이었으며,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곳은 3 곳 중 1곳 꼴이었습니다.
2020년 기준 부채비율 200% 이상인 부실 계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 10곳은 △CJ(37개) △SK·롯데(30개) △효성(28개) △한화·카카오(25개) △삼성(20개) △GS(18개) △LG(17개) △현대자동차·LS(16개) 등이었습니다. 2021년 부채비율 200% 이상인 계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 10곳은 △CJ(38개) △카카오(32개) △SK(31개) △롯데·한화·GS(24개) △효성(23개) △네이버(19개) △LG(18개) △삼성(17개) 등이었습니다. 2022년 기준 부채비율 200% 이상 계열사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집단 10곳은 △카카오(37개) △SK(32개) △롯데·CJ(30개) △GS(25개) △한화·효성(24개) △네이버(23개) △현대자동차·중흥건설(21개)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SK·현대차·GS 등 9곳, 자본잠식·부채비율 200% 계열사 모두 늘어
기업이 자본잠식에 빠지거나 부채비율이 200% 이상으로 높아지는 건 파산 직전 상황과도 같습니다. 수익을 내더라도 곳간에 쌓지 못할뿐더러 이자도 제때 못 갚는 '한계기업'으로 불립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이 영업을 잘해서 영업이익이 생기면 그걸로 부채를 빨리 상환해야 재무건전성이 올라가는데, 자본잠식이거나 부채비율이 높다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상환할 수 없는 기업일 가능성이 높다"라면서 "30대그룹 계열사가 전반적으로 자본잠식에 빠지거나 부채비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자금 조달이 어렵고 경영이 안 좋았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습니다.
17일 오후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다. (사진=뉴시스)
30대그룹 가운데 자본잠식과 부채비율이 동시에 악화된 곳들도 있습니다. 2020년~2022년 사이 30대그룹에 속했던 34개 대기업집단 중 자본잠식 상태 계열사와 부채비율 200% 이상인 계열사 숫자가 동시에 늘어난 집단은 9곳으로, △SK △현대자동차 △포스코 △GS △신세계 △카카오 △DL △미래에셋 △HDC 등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SK는 2020년 자본잠식 계열사가 15곳, 부채비율 200% 이상 계열사가 30곳이었습니다. 2022년엔 각각 27곳, 32곳으로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현대자동차 10곳→12곳, 16곳→21곳 △포스코 4곳→7곳, 4곳→5곳 △GS 19곳→33곳, 18곳→25곳이 됐습니다. 또 △신세계 10곳→11곳, 13곳→17곳 △카카오 17곳→21곳, 25곳→37곳 △DL 12곳→13곳, 9곳→16곳 △미래에셋 19곳→21곳, 7곳→8곳 △HDC 12곳→13곳, 9곳→12곳으로 증가했습니다.
코로나 19 팬데믹에도 문어발식 방만경영…재무상황 악화 '악순환'
이번 분석기간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3년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겹칩니다. 이 기간 30대그룹 계열사들이 자본잠식에 빠지거나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등 재무상황이 극도로 악화된 원인으로 코로나19를 지목할 수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재계의 문어발식 방만경영도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실제로 최근 3년 동안 30대그룹은 열악한 재무상황에서도 계열사 숫자를 계속해서 늘렸습니다. 계열사가 늘어난 만큼 자본잠식 또는 부채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회사 숫자도 증가했습니다. 30대그룹 총 계열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초인 2020년 1279곳이었다가 2022년 1487곳으로 16.26%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자본잠식에 빠진 회사는 13.14%, 부채비율이 100%를 넘는 기업의 비율은 14.98% 증가했습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들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자본잠식이나 부채 문제를 감안하지 않은 채 돈을 잘 벌 것이라고만 생각해 계열사를 늘린 경향이 있다"며 "코로나19를 지나면서 당초 기업들의 자체 예상보다 경기가 안 좋아졌는데, 재무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계열사를 계속해서 안고 갈 경우 국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다른 기업도 망하게 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고금리 기조가 오래갈 건데 그렇게 되면 기업들에게 굉장한 부담이 된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위기를 거치면서도 계열사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해서 빚을 많이 졌다"라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기업 부채나 자본잠식 문세가 심각한데, 기업들이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가 결국 관건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나라마다 명운이 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부채비율이 늘어난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수익성 악화는 심상치 않다"면서 "기업도 가채부채 대책처럼 연체율 증가 등에 대한 관리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습니다.
2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병호·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