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식품산업의 AI 도입 경쟁, 속도보다 방향이다
2026-02-11 06:00:00 2026-02-11 06:00:00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일부 첨단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생산과 유통, 소비 전반에 걸쳐 산업 질서를 재편하는 범용 기술로 자리 잡았고, 국내 식품산업 역시 그 영향권 안에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AI를 얼마나 빨리 도입하느냐보다, 어떤 기준과 책임 의식 아래 활용하느냐가 산업의 신뢰와 지속가능성을 좌우한다. AI 시대 식품산업의 선택은 기술 전략을 넘어 사회적 판단의 문제다.
 
그동안 식품산업은 경험과 숙련, 감각에 기반한 산업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국내 식품기업들의 행보는 분명하다. CJ제일제당은 AI 기반 품질 예측 시스템을 통해 발효·가공 공정의 편차를 줄이고 있으며, 롯데웰푸드와 오리온 등 주요 기업들은 소비자 구매 데이터와 온라인 반응을 분석해 신제품 기획 속도를 높이고 있다. 시장의 ‘감’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데이터로 소비자를 해석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생산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다. AI 기반 수요 예측은 과잉 생산과 재고 부담을 줄이고, 원가 관리의 정확도를 높인다. 특히 원재료 가격 변동성이 큰 식품산업에서 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더 나아가 영상 인식과 공정 분석 AI를 활용한 이물 검출과 이상 감지는 식품 안전 관리의 패러다임을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바꾸고 있다. 식품 안전은 비용 절감의 대상이 아니라, 기업이 반드시 지켜야 할 공공적 책임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의미가 크다.
 
주목할 점은 AI가 식품산업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건강 상태와 식습관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식단과 식품을 제안하는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점차 등장하고 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건강에 대한 관심 확대 속에서 식품은 더 이상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예방적 헬스케어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식품기업이 데이터와 결합한 라이프케어 산업으로 진화할 가능성은 이제 가정이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지다.
 
그러나 기술 도입의 이면에 대한 성찰 없이 낙관만 앞세우는 태도는 위험하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데이터의 편향과 한계는 그대로 결과에 반영된다. 현장에서는 AI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누가 최종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한 식품기업 품질관리 책임자는 “AI가 공정을 안정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맛과 식감, 소비자 신뢰에 대한 판단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라고 말한다. 알고리즘은 판단을 보조할 수는 있어도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노동과 조직의 변화 역시 중요한 과제다. 자동화로 단순 반복 업무는 줄어들겠지만, 데이터를 이해하고 이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인재의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기술 투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교육과 조직문화 혁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AI 도입은 비용 증가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로봇이 음식을 자동으로 조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AI 시대 식품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효율과 속도만을 기준으로 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 환경 지속가능성, 그리고 식품이 지닌 문화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식품 폐기물 감소와 에너지 사용 최적화, 탄소 배출 관리 등은 AI가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그 목표는 비용 절감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 이행이어야 한다.
 
결국 AI는 식품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것을 어떤 철학과 기준으로 활용하느냐가 산업의 수준과 신뢰를 가른다. 기술 도입의 성과는 숫자로 측정할 수 있지만, 그 선택의 책임은 사회 전체가 감당하게 된다. AI가 확산됨에 따라 인문학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정원호 부산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한국식품유통학회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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