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를 건넌 뒤 돌아갈 배를 불태운다”거나 “돌아갈 다리를 끊는다” 같은 말이 있다. 다리에 관한 말이나 성어는 결연한 의지를 강조할 때 쓰이곤 한다. 결사 항전이나 불퇴전의 상징이다.
며칠 전 한 뉴스 사이트에서 한 장의 사진을 봤다. 국힘 장동혁 대표 일행 수백 명이 서울 마포대교를 건너 청와대로 간다는 도보투쟁 사진. 기사에 따르면 민주주의 압살에 항의하기 위해 여의도 국회에서 세종로 1번지 청와대까지 걷는 투쟁이라고 한다. 행진에는 친장동혁계 의원들과 지지자 등 약 30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빨강색 목도리를 착용한 그들은 장 대표 이름을 연호하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고, 윤석열 전 대통령 복귀와 ‘윤 어게인’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볼 때마다 참 이상했는데, 왜 미국 국기나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항간에 우스갯소리로 ‘민주당 최고 지지 세력은 장동혁 대표와 윤 어게인 그룹’이라거나 ‘장 대표는 민주당 비밀 특수 당원’이라는 말이 회자된다고 한다. 물론 조롱 섞인 농담이자 어이없다는 한탄일 게다. 계엄 이후 국힘이 취해온 입장이나 각종 행사를 보면 국힘은 해산이 불가피한 집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번 지방선거는 국힘이 ‘영남 자민련’이나 ‘TK 지역당’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계기이자, 70년 극우 정당의 종언을 알리는 마지막 선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의 정체성이나 시대 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은 너무 사치스럽고 원론적인, 그래서 한가한 지적이 될 수밖에 없다. 계엄에 대한 사과 이후에도 오락가락하며 유권자를 농락하고, 국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철두철미 외면하는 이상 그들에게는 해산이 너무도 당연한 게 아닌가 싶다. 15% 남짓으로 추정되는 ‘윤 어게인’ 극우 세력을 부추기며 ‘미국이 와서 옥중 윤석열 대통령을 구출해 줄 것’이라거나, ‘중국인들에 의한 부정선거가 자행됐으니 선거 결과는 무효’라는 주장을 여전히 해대는 것은 국익과 국격 차원에서도 허용할 수 있는 정당의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국힘에게 정당의 정강정책이나 공천은 의미도 없으려니와, 어떤 비전이나 희망은 물론 최소한의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 선거제도가 놀이동산의 회전목마 같은 속성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현 국힘 소속 의원 같은 사람들을 국민의 대표로 뽑아낼 수밖에 없다면 대의제 민주정치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다시 한번 제기할 수밖에 없다. 양 극단 빠들이 국민 대표라는 뱃지를 달고 온갖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며, 정치라는 이름으로 의원 1인 당 매년 수십억 원씩 나랏돈을 써가며 몰상식한 언행을 일삼는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배반이자 정면 부정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들이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분수대 앞에서 현장 의원총회를 마친 뒤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런 지경이니 국힘에 무엇을 촉구한다는 게 별 의미가 없다. 스스로 말했다시피 옥쇄를 각오했다 하니 돌아갈 배도 없겠지만, 민주공화정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정립을 위해서도 국힘은 사라지는 게 맞다. 왜 통행을 방해하며 인도를 따라 걷는지 영문 몰라 하는 시민들의 무관심과 눈총은 시대정신을 놓치고 반성하지 않는 정치 참칭 그룹의 말로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마포대교를 건넌 장동혁 대표 일행은 차를 타고 돌아갔다고 한다. ‘오로지 당권’이라는 차, ‘윤석열 부활단’이라는 차. 그들이 돌아갈 곳은 의사당이 아니다. 뭘 검색하다가 신통방통하다는 AI가 어설프게 답변하면 점잖게 꾸짖으며 바로잡으라고 되짚어주는 국민들 수준에서 볼 때 국힘은 기도 안 차는 집단이다. 정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국힘만 모르고 있다.
이강윤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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