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하청노동자의 눈물②)암 발병 추적해보니…발암물질 ‘범벅’
폐암 환자 작업장서 폐암 유발 인듐 등 수백종 사용
뇌종양 환자는 ‘고위험 복합 발암인자’ 노출 가능성
유방암 환자 공장 생식독성물질 62개 화합물 취급
정량화 어려운 혼합물질 노출…높아진 위험의 밀도
2026-04-02 06:00:00 2026-04-02 06:00:00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폐암 진단을 받은 ㅂ씨의 혈액에서 검출된 인듐, 뇌종양으로 숨진 ㅇ씨가 취급했던 유기용제, 그리고 행정소송 끝에 유방암 인과관계를 인정받은 손윤화씨 일터까지. 이들의 발병 경로를 추적해보니 근무 시점에 해당 사업장에서 질병과 상관관계를 갖는 발암물질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것으로 환경부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구체적 사용량과 노출량을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황산과 비소, 니켈, 벤젠 등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규정한 1급 발암물질을 일상적으로 취급하는 반도체 공장의 특성상 수백 종의 화학물질에 ‘복합 노출’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특히 단일 물질의 독성을 넘어, 수백 종의 화학물질이 혼합·반응하며 발생하는 ‘복합 노출’의 위험성은 폐암과 뇌종양, 유방암 등 치명적인 직업병의 도화선입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은 고순도 정밀화학 물질이 소재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유해 물질이 잔류하는 기계 안으로 몸을 집어넣어 청소하거나 점검·관리하는 하청 노동자들의 노출 빈도도 상대적으로 더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986년 삼성전자와 삼성코닝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삼성전자 기흥, 화성 사업장 그린센터, UT동, 그린3동 등에서 슬러지 탈리, 분진 청소, 기계 및 배관청소, 슬러지 운반 등의 작업에 종사한 ㅂ씨의 병명은 폐암입니다. 슬러지 내에는 인듐, 니켈, 망간, 납, 비소 등 중금속이 잔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고, 반도체 세정·식각 공정에서 사용된 불산, 황산, 염산 등 강산류와 기타 혼합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2023년 특수건강검진 당시 그의 혈액에서는 인듐이 검출됐는데, MSDS에 따르면 유럽화학물질청(ECHA)이 쥐를 산화 인듐에 13주 동안 흡입 노출시킨 결과 폐 병변이 발생했을 만큼 독성에 대한 위험이 큽니다. 화학물질안정원의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을 보면, 2022년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는 인듐계 화합물을 포함해 471개의 화학물질(혼합·단일물질)을 취급했으며 화성사업장 또한 특정표적장기독성 인듐계 화합물을 비롯해 423개의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악성 뇌종양(교모세포종)을 진단을 받고 사망한 ㅇ씨의 경우 지난 2010년부터 화성공장에서 14년 근무한 하청 노동자로, 각종 화학물질을 공급하는 CCSS(화학물질 중앙공급시스템)에서 일했습니다. 근무 당시인 2014년 기준 화성 사업장에는 황산, 염산, 불산 혼합용액 등이 사용됐습니다. MSDS와 국제암연구소(IARC) 분류를 종합하면 비소계 화합물인 아르신(화학물질 번호·CAS 7784-42-1)의 경우 발암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016년부터 취급된 것으로 보이는 코발트계 화합물(CAS 7440-48-4)은 급성독성과 호흡기과민성, 발암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위험 복합 발암인자들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뇌종양 등 중추신경계에도 영향이 없을 수 없습니다. ㅇ씨 산재를 대리하고 있는 이고은 노무사(정우 공인노무사 사무소)는 “유지보수(PM) 작업 중 화학물질이 잔류하고 있는 소모품과 부품 등을 교체해야 하므로 이 과정에서 지용성 신경독성 문제가 있는 유기용제를 비롯해 고농도 수준의 화학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며 “ㅇ씨 사건 전에 공개된 작업 환경 측정 결과를 보면 뇌나 중추신경계에 유해한 각종 유기용제와 염화메틸렌, 중추신경계 영향을 주는 에틸벤젠 등이 포함돼 있는 만큼 발병의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A2공장 OLED생산라인에서 청소업무를 했던 손윤화씨는 지난해 행정소송을 통해 유방암 연관성을 입증받았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각 유해물질의 노출값은 측정 시기와 방법에 따라 다르게 산출될 수 있다’며 일련의 공정으로 인해 벤젠, 포름알데히드, 산화에틸렌 등 상병을 유발하는 다양한 유해물질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었을 개연성이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OLED 제조공정 자체를 수행한 것은 아니었으나, 유기화합물이나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환경에서 업무를 수행하면서 상병의 발병 내지 악화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사옥 전경.(사진=삼성디스플레이)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손씨가 근무하던 2016년 당시 삼성디스플레이 OLED사업장에서는 생식독성에 영향을 주는 글리콜 에테르계 혼합물(CAS 112-36-7)과 1-메틸-2-피롤리디논(872-50-4) 비롯해 62개의 화학물질이 취급됐습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산업기반 노출매트릭스(K-CAREX) 연구에 따르면,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군 발암물질(Group 1)에 노출된 반도체 제조업 종사자의 규모는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조사 시점인 2020년 기준 약 14만6984명의 반도체 종사 노동자(2020년 통계청 인구주택조사 결과 기준)를 분석했을 때, 100명 중 5명은 황산(5.3%)에, 3명은 비소(3%)에, 2~3명은 방사선(2.63%), 니켈(1.31%) 등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해당 물질은 고용노동부 고시 및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는 유해인자로 MSDS(물질안전보건자료) 기준, 황산은 후두암 및 폐암 유발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반도체 웨이퍼 주입 공정 등에 활용되는 비소 및 그 무기화합물은 폐암, 피부암, 방광암 등을 유발할 수 있으며 급성 독성이나 신경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신체를 투과하는 전리방사선의 경우 백혈병, 골수암, 갑상선암 등 고형암을 유발하는 등 치명적이며 도금·합금 공정 과정에서 사용되는 니켈은 폐암이나 비강암, 신장·피부 독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고 적층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화학물질 사용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의 DS부문 화학물질 사용량은 2023년 512톤에서 2024년 545톤으로 늘었습니다. 기흥사업장에서 취급되는 화학 물질은 2014년 65개에서 625% 증가했으며 화성사업장에서 취급되는 화학 물질 또한 2014년 86개에서 392% 뛰었습니다. 취급 물질이 늘어난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독성 물질이나 혼합 반응에 의한 유해물질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화학물질 사용량 증가는 필연적으로 환경 지표의 악화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반도체 대표 양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2023년 1733만8149t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 이하 톤) △2024년 1768만1018톤 △2025년 1826만5108톤으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SK하이닉스(국내 사업장 기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3년 478만4221톤 △2024년 484만8541톤 △2025년 499만4862톤으로 오름세를 보였습니다. SK하이닉스의 국내 총폐기물 발생량은 2023년 32만6090톤에서 이듬해 35만6910톤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종란 노무사는 “첨단산업은 전통 산업과 달리 신규 화학물질이 많이 사용되고 신제품의 출시도 빠르기 때문에 오늘 측정한 것이 과거랑 똑같지 않고, 새로운 물질이 사용되다가 또 바뀌기도 해서 이를 일일이 규명하기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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