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두고 법 개정과 모범관행(가이드라인) 사이에서 막판 수위를 조율하고 있습니다. 금융지주 회장 장기 연임 문제를 제도적으로 손보겠다는 방향성은 분명한데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직접 명문화할지 아니면 자율 규제 성격의 모범관행으로 유도할지를 놓고 고심하는 분위기입니다.
당국, 강제성 수위 놓고 장고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달 중 개선안 발표를 목표로 '지배구조 선진화 TF'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중동 사태, 민생 안정 정책 등 현안에 밀려 6월 지방선거 이후 전망까지 나왔지만, 내달 대통령 업무보고 가능성이 제기되며 개선안 마련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입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6개월 후 다시 하겠다고 언급한 만큼 6월 중 업무보고가 추가로 있을 수 있다"면서 "앞선 업무보고에서 언급된 내용인 만큼 조만간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당초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 주총 전인 지난 3월12일 개선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하루 전날 돌연 일정을 미뤘습니다. 지배구조 개선 논의 초기 도입이 유력시 됐던 '회장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 도입 등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신한지주(055550))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지주(316140) 회장, 빈대인
BNK금융지주(138930) 회장 등이 모두 출석 주주 3분의 2를 훌쩍 뛰어넘는 찬성률을 보이며 연임에 성공했습니다.
현재 금융당국은 금융지주사의 이사회 독립성 강화,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의 투명성 제고, 사외이사 전문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검토 중입니다. 개선안 주요 내용으로는 금융지주 회장 연임시 주주총회 특별결의 도입를 비롯해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전원 사외이사 구성 △임원후보 추천시 사외이사 전원 서명제 △금융사고 발생 시 임원 성과급 환수 '클로백 제도' △사외이사 외부 평가·공시 의무화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사외이사 직접 추천 방안 △사외이사 3년 단임제 등이 거론됩니다.
특히 당국은 회장 임기 '3연임 제한' 법제화 방안을 놓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김현정 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금융지주 회장 연임을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제한하고, 회장 3연임을 금지하는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입니다.
법안 발의 의원실 관계자는 "금융당국에 회장 3연임을 제한하는 안건을 넣어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며 "경영 승계와 관련해 형식적 절차만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부서울청사 내 금융위원회 복도에서 직원들이 지나가는 모습. (사진=뉴시스)
당국 구두개입 속 눈치게임 반복
다만 '회장 3연임 금지' 조항을 지배구조법에 명문화하더라도 실제 입법 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금융지주만 별도로 연임 제한을 두는 것이 상법 체계나 다른 대기업 집단과의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임위 검토 과정에서 관련 부처(금융위)나 상임위 전문자문위원의 반대 의견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당국 내부에서도 지배구조법에 구체적인 연임 횟수를 못 박는 방식에는 회의적인 기류가 감지됩니다. 경영 성과와 무관하게 연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 주주 권한과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입니다. 이에 따라 상위법에는 ‘회장 연임 과정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원칙 수준만 담고, 세부적인 연임 제한이나 이사회 운영 기준은 모범관행 형태로 유도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에도 금융권에서는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통해 지배구조 변화가 이뤄진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금융지주 회장의 만 70세 연령 제한이나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 시 현직 회장 제외 등은 현행 지배구조법에 명문화된 내용이 아닙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공개석상에서 필요성을 거론했고, 금융지주들이 당국 기조를 의식해 순차적으로 정관을 개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바 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지배구조 개선 역시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법적 근거 없이 당국 압박 중심으로 운영될 경우 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금융지주들이 정권이나 감독당국 수장의 기조 변화에 따라 눈치 보기식으로 정관을 손보는 관행이 반복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옵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민간 금융사 CEO 인사에 당국이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우세합니다. 당국이 지배구조 선진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회장 연임 문제에만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지면서 본질적인 이사회 독립성 강화 논의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결국 지배구조법에 명문화하기 어려운 사안은 당국이 모범관행이나 구두개입 등을 압박하는 구조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상 권고인지 규제인지 모호한 상황에서 금융사들이 눈치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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