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소통의 이름으로 군체가 되는 시대
2026-06-02 06:00:00 2026-06-02 06:00:00
새로운 좀비가 탄생했다. 단순히 피에 굶주린 괴물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는 좀비. 그들은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의지처럼 움직인다. 영화 <군체>는 그 소통 능력을 ‘진화’로 규정한다. 
 
<부산행>에 이어 <반도> 그리고 이번 작품 <군체>까지 연상호 감독은 계속해서 좀비가 등장하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선보인다. 그러나 그가 끝내 응시하는 것은 폐허 그 자체가 아니라, 폐허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부산행>이 재난의 한복판에서 서로를 구하는 사람들을 보여주었다면, <반도>에서는 무너진 세계에서 스스로 인간성을 내던진 잔혹한 인간들과 끝까지 누군가를 지키려는 인간들을 대비시켰다. 시선은 줄곧 ‘인간’이었고 결국 인간이 희망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그런데 시선이 달라졌다. 영화는 ‘서영철’이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인간에서 좀비로 시선을 돌린다. 서영철은 인간 사회에서 반복되는 비극의 근원이 소통의 실패에 있다고 믿는 과학자다. 오해, 왜곡, 단절 등의 간극들이 결국 사람을 죽인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는 서로 연결되어 소통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우리는 흔히 소통과 연결을 좋은 가치로 여긴다. <군체>는 이에 대해 현실의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위험한 것이 정말 소통의 부재냐고. 그게 아니라면 진정 위험한 것은 무엇일까. 답은 오히려 그 반대다. 지나치게 매끄러운 연결, 너무 빠르고 강한 동조, 그 속에서 자기 판단 능력을 잃어버리는 상태다. ‘군체’가 되어버린 좀비처럼.
 
선거철이다. 영화의 장면들은 정확히 작금의 세상과 닮았다. 경쟁하는 후보와 정당, 지지자, 언론과 유튜버까지 뒤엉켜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장면들이 소름 돋게 일치한다. 소통을 주도하는 선도자가 발화하는 순간 방향과 표적이 지정되고, 그곳을 향해 일제히 몰려드는 모습! 
 
좀비가 몸에서 내뿜는 점액질로 연결된다면 인간은 말로 연결된다. 이 말로써 ‘선동’과 ‘추종’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오늘의 선동은 단순히 거짓말을 퍼뜨리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깊은 욕망을 건드리는 기술이다. 누군가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해 줄 누군가를 원하고, 누군가는 분노할 대상을 원하며, 누군가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원한다. 선동가는 그 욕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욕망을 ‘집단 지성’이라는 미명으로 가장 능숙하게 이용하는 사람일 뿐이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 <군체>는 모두의 생각이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세상에서 집단의 힘은 커지고, 개별 인간은 점점 무력해지는 현실을 그려낸다. (사진=쇼박스)
 
선동가를 제거하면 세상이 나아질까. 아니다. 한 사람이 사라지면 반드시 또 다른 선동가가 등장한다. 문제는 선동가 개인에게만 있지 않고, 그런 목소리에 기꺼이 자신을 맡기고 싶어하는 대중의 취약함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선동가가 존재하더라도 군체가 되지 않는 시민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결국 답은 시민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있다. 모두가 달려갈 때 잠시 멈춰 서는 사람, 모두가 확신할 때 한 번 더 질문을 던지는 사람, 상대를 적으로 규정할 때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는 사람. 민주주의는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더라도 그 차이를 견디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연상호의 희망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다. 그의 희망은 소박하다. 좀비의 위협보다 좀비와 구별되지 않는 인간들이 더 두렵다는 걸 많은 이들이 자각하는 것. 그 자각으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분노를 공유하며,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허구의 현실로 진짜 현실을 바꾸는 게 그토록 어려운지 그가 이번엔 좀비를 진화까지 시켜 또 말하는 것이니 그의 절절한 목소리를 귀 기울여 좀 들어보자. 부디, 제발.
 
이승연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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