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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W 완패' 책임론..말바꾸기 금융당국·무리한 검찰수사
ELW 12개 증권사 재판서 검찰 '완패'..법원 "특혜 아니다"
2012-01-31 10:20:39 2012-01-31 10:26:51
 
 
[뉴스토마토 김미애기자] 주식워런트증권(ELW) 부당거래 혐의로 기소된 12개 증권사에 대한 공소사실 모두가 1심 법원에서 '완패'함에 따라 '무리한 기소'를 했다는 책임론은 사건의 단초를 제공한 금융당국과 검찰이 고스란히 나눠서 지게 됐다.
 
특히 금융감독원, 증권거래소 등은 검찰이 자신감을 갖고 'ELW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된 법률·규정을 수사하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한 장본인들이다.
 
수사 초기 검찰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해당 기관들은, 막상 법정에서는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증권업계와 학계 등 관련 전문가들이 검찰 수사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일제히 쏟아내면서 해당 기관들은 문제가 된 규정들을 슬그머니 바꾸기도 했다.
 
증권사에 유리하도록 증언을 쏟아내는 금융당국의 애매모호한 태도 탓에 순식간에 '결정적 카드'를 잃은 검찰이 뒤늦게 제시한 회심의 '반격 카드' 역시 통하지 않았다.
 
비록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였고, 금융감독당국과 증권거래소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다면 충분히 범죄혐의를 의심할만한 사건이었다.
 
이번 수사로 검찰에게는 '증권가 현실을 모르는 검찰'이라는 딱지마저 붙었다.
 
검찰이 '스캘퍼(초단타매매자)의 거래가 일반투자자의 손실에 영향을 준다'며 제출한 분석자료가 이번 재판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는 듯 했지만 '(주문처리상) 시간우선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판단을 재차 확인했을 뿐이다.
 
◇'ELW 재판' 도중 쟁점규정 바꾼 증권거래소
 
검찰의 수사기간과 재판내내 금융감독 당국의 태도와 입장은 애매모호했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법정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알렸지만, 정작 금융감독당국이나 거래소는 공식 입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검찰이 기소하기 전에 금융위원회가 추가건전화 방안을 발표하며 재판 내내 논쟁거리를 만들었다면, 증권거래소는 쟁점이 된 해당 규정을 슬그머니 개정하기도 했다.
 
해당 자료를 작성한 사무관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지만, 그는 추가건전화 방안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하지 않고 원칙만 언급했다. 검찰 주장이 맞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찰 주장이 명백하게 틀렸다는 것도 아니었다.
 
"금융감독 당국자로서 언급하기에 부적절하다"는 식의 답변을 반복하자 재판장은 몇 번이나 "기관 입장 생각하지 말고 보고 들은대로 말하면 된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1심 재판은 검찰의 완패로 끝났지만 향후 2심과 최종심까지 남은 재판에서도 금융위와 금감원, 증권거래소의 무책임하고 안이한 처신은 오랫동안 논쟁꺼리로 남을 전망이다.
 
◇법원 "'시간우선 원칙' 존재하지 않아"
 
검찰은 지난해 11월 대신증권 사건에서 ELW 관련 첫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에도 나머지 증권사의 공판 내내 '스캘퍼의 거래 속도를 의도적으로 빠르게 해준 게 과연 정당한가'라며 증권사의 '특혜제공'을 문제 삼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검찰은 증권사의 영업이익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먼저라고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증권사가 DMA(증권 자동전달시스템, 직접 전용주문)시스템을 스캘퍼에게만 비밀리에 제공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대증권과 이트레이드증권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한창훈 부장판사) 역시 31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형사처벌 영역과 정책적·행정적 규제 영역을 구별할 필요성이 있는데, '특혜 제공'은 범죄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스캘퍼 특혜 제공, 비밀 아니다"
 
금융거래에서 특정 고객만의 주문이 상대적으로 빨리 처리되면 일반투자자 고객들은 최소한 그런 사실을 알권리가 있는데 증권사가 이를 알리지 않았기에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DMA시스템은 세계적 추세이며 이미 국내 증권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스캘퍼들이 증권사를 찾아다니며 거래를 성사시켜왔던 사실에 비춰보면 증권사가 일반투자자들 몰래 스캘퍼에게 전용시스템을 제공한 것이라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LW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스캘퍼 조모씨(기소)의 경우는 타증권사에서 ELW를 거래하다 속도가 느려서 현대증권으로 옮긴 예다.
 
조씨는 현대증권에 대한 재판 도중 "전용시스템을 제공받은 게 일반투자자에 비해 '특혜'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더 많은 돈을 내는 만큼 비행기를 타더라도 VIP에게 그정도의 특혜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또 법원은 증권사가 스캘퍼들에게 제공하는 '미가공 원데이터'는 알고리즘 매매 방식의 특수성으로 인해 도입된 것일 뿐 '스캘퍼의 매매기법 자체' 또는 '주문처리 속도'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속도의 면에서 가공·편집된 시세정보를 제공받는 경우와 차이가 0.001초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며, 원데이터를 그대로 일반투자자에게 전달하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형태가 아니라서 변환해서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초자산 가격을 보고 LP(유동성공급자)의 가격변동을 예측하는 스캘퍼에게 시험을 볼때 힌트까지 독점적으로 주는 것과 같다'는 검찰의 주장은 미가공 원데이터 제공이 이뤄지게 된 경위에 대한 사실관계에 부합히지 않는 무리한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ELW 재판, 검찰과 변호인 측 주장 요지> 
 
◇법원 "일반투자자 손해, 스캘퍼 탓 아니다"
 
법원은 ELW 시장에서 일반투자자들이 대규모 손실을 입는 이유는 'ELW 시장의 구조적 요인' 때문이지 스캘퍼 탓이 아니라고 재차 확인했다.
 
재판부는 일반투자자들이 손실을 입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시간가치의 손실', 'LP 호가 스프레드로 인한 손실', 'ELW 거래 수수료 비용'을 거론하며 일반투자자들의 투기적인 매매형태도 가미돼 손실을 증폭한다고 봤다.
 
즉 만기에 가까워질수록 가격이 0원에 수렴되는 ELW 시장의 특성상 '단기간 내에 기초자산의 가격이 일반투자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동해 행사가격에 진입'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일반투자자들이 손실를 입는다는 것이다.
 
또 재판부는 극미 미미한 경우(0.006%~0.008%)를 제외하면 스캘퍼의 주문과 일반투자자의 주문이 출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일부 일반투자자들이 스캘퍼로 인해 거래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오해하는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ELW 호가 잔량 정보'가 전송되는 과정에서 그 전송이 1.3~1.4초 지연돼 발생하는 착시현상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반투자자들이 HTS 화면으로 보는 LP 호가잔량정보는 변경되기 전의 과거 호가잔량정보라서, 일반투자자가 호가변경전 가격으로 ELW를 매수하지 못하는 이유는 'LP가 이미 호가를 변경했기 때문'이지 스캘퍼 탓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법원은 증권사로부터 특혜를 제공 받아 ELW 거래를 해 수십억원의 부당이익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스캘퍼 박씨 등에게도 "이들이 부정한 수단을 이용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증권사 형사처벌할 근거 없다"..'무리한 기소 논란'
 
ELW 부당거래 혐의로 기소된 12개 증권사 사건을 심리한 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결같이 "증권사를 형사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ELW 불공정 거래' 논란은 금융감독 당국이 ELW 시장의 공정성과 대외 경쟁력, 전자통신 기술의 발전 상황 등에 대한 검토를 거친 다음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할 일인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형사처벌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법원은 또 '특혜 서비스'를 제공한 증권사의 행위 역시 DMA 서비스가 허용되어 온 현실, '주문처리 과정에서 속도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이 명확하게 선언되거나 그 실현가능한 방법과 기준이 제시된 바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특혜제공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12개 증권사 대표들을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만든 검찰에게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증권사는 "오랜 수사와 무리한 기소, 재판기간 탓에 증권시장의 성장동력이 위축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 내내 변호인은 "수사와 재판에 임하느라 중요 업무를 담당하는 임원들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꼬집었으며, 실제로 증권사 사장들은 기소되기 이전부터 1년여간 사업확장이나 해외 출장 계획을 마음 편히 진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증권사가 무죄판결을 받은 데는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
 
재판 내내 검찰 수사 당시와는 달리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인 금융당국의 태도는 기소부터 선고까지 8개월 간 증권시장의 사상 초유의 사태를 야기한 책임론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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