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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위안부 할머니와 신인 여배우의 평행이론
연극 <빨간시>
2013-03-25 08:37:57 2013-03-25 08:40:38
[뉴스토마토 이현주기자] 일제에 유린 당한 할머니의 청춘, 빼앗긴 신인 여배우의 꿈, 그리고 침묵하는 우리. 극단 고래의 연극 <빨간시>는 하나의 작품에 세 가지 주제를 모두 녹였다.
 
지난 2012년 겨울 혜화동 소극장에서 초연을 했던 <빨간시>(작·연출 이해성)가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올 봄 다시 무대에 오른다. 큰 무대로 옮기면서 연극의 울림은 더욱 커졌다.
 
극의 이야기는 무겁고 아프다. 자살한 여배우의 성 상납 사건을 목도한 일간지 기자 동주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한다. 하지만 그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젊은 시절 위안부로 몸과 마음을 난도질 당한 친할머니를 증오한다. 동주는 폭력에 노출된 여성을 적극적으로 타자화하는 우리의 가혹함, 그리고 그에 따른 마음 속 일말의 죄책감을 동시에 대변하는 인물이다.
 
극은 동주가 저승사자의 실수로 할머니 대신 저승에 다녀오면서 겪게 되는 내적 갈등과 변화로 주제 의식을 전달한다. 저승에서 ‘염라’과 ‘옥황’을 만나면서 여배우의 죽음을 모른 척했던 스스로의 폭력성을 깨우친 동주는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게 된다.
 
위안부 문제를 장자연 사건과 결부시키면서 단순히 민족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저서에서 군 위안부 문제를 오롯이 민족의 아픔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경계한 바 있다. 우리 사회에 구조적으로 스며든 남성에 의한 폭력이 더 본질적 문제라는 지적이다. <빨간시> 역시 위안부와 여배우의 연결 고리를 ‘남성 중심의 폭력 사회’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침묵으로 이를 고착화시키는 방관자적 폭력성을 함께 고발한다.
 
"기억하고 이야기해야 치유가 돼. 치유되지 않은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다른 이의 고통으로 흘러 다니게 돼."
 
극중 옥황의 대사에서 보듯 <빨간시>는 이 풀기 어려운 숙제를 해결하기를 자처한다. 동주는 시로, 할머니는 고백으로, 여배우는 춤으로 각각 그들의 얼룩을 지워내려 애쓴다. 그만큼 연극의 볼거리는 다채롭다.
 
 
하지만 그 치유의 방식이 매우 낯설다. 신명 나는 타악기 연주로 할머니와 여배우의 한을 위로하는 장면은 작품의 주제 의식에 비하면 한없이 가볍다. 여성에 대한 폭력의 반복이 결코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한계를 인정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저승으로 떠난 할머니가 트로트를 열창하는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는 설정의 경우도 치유의 흔적을 발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대 최학균, 조명 김성구, 출연 강애심, 박용수, 이지현, 김동완, 강소연 등, 3월 22일부터 3월 3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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