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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초봉 삭감 논란 일파만파
`임금만 깍는 게 아닌가` 노동계 불안감 확산
직접 당사자 대학생도 `반신반의`
2009-02-26 17:18:00 2009-02-26 20:06:32
[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30대 그룹이 올해 대졸 신입사원 초임을 최대 28%까지 삭감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재계가 약속한 고용보장, 채용확대에 대한 노동계와 대학생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 23일 노사민정 합의문이 발표된 지 이틀 만에 삼성, LG 등 주요 대기업의 초임 삭감폭이 결정됐지만 정작 '반대급부'인 고용보장과 채용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개별 기업의 노사협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는 이번 합의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수사(修辭)'는 허울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 대기업 초봉 삭감..노동계 반발
 
노동계는 대졸 초임 삭감 사실이 알려지자 마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강충호 한국노총 대변인은 26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에 출연해 "고통분담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노사민정 합의문에 직접 서명까지 했던 전경련이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사민정 합의 정신의 핵심은 임금 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유지와 나누기가 핵심"이라며 "일방적으로 신입사원 임금을 삭감하기로 한 것은 합의정신에 위배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3일 합의를 공식 발표한 뒤에도 재계와 노동계는 '절감'이라는 단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냈다.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절감은 근로자의 기본급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삭감과 같은 표현"이라고 했지만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절감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데 따라 임금이 감소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적지 않은 산고 끝에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논의 과정에서 불거졌던 의견차가 성급히 봉합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당시 시민단체 대표로 협상을 지켜봤던 한 교수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미묘하게 반응하는 등 다들 촉각을 곤두세웠다"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초임 삭감의 당사자인 대학생들 역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 대학가, '좋은 것 같으면서도 왠지..'
 
정주영 한국외대 사회과학대 학생회장은 "대학 졸업과 함께 백수가 되느니, 인턴이라도 해서 경력을 쌓는 게 나을 것 같다"면서도 "다같이 고통분담을 해야하는데 특정 세대에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대학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단 재계는 노동계가 요구하고 있는 고용 안정성에 대한 논의는 개별 기업 노사가 논의할 사항이라고 못박았다.
 
손훈정 전경련 노사정책팀 과장은 "지금의 고비용 구조가 지속된다면 일자리가 위협받기 때문에 노동계가 양보를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합의한 것"이라며 "재계와 노동계가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원칙을 지키되 고용보장 등에 대한 내용은 기업별 사정에 따라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의 이같은 방침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민주노총은 지난 1999년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노사정위가 추진하는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이번에도 함께 얘기하자며 재계에서 찾아왔지만 협상 주체가 재계 편향적으로 구성돼 있어 불참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 "합의문 내용, 1년도 못 갈 것"
 
이처럼 이번 합의문 내용을 두고서 재계와 노동계가 갑론을박을 벌이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는 이번 합의가 1년도 안 채 파행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애초에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낼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합의문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노동자측이 생계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고용 안정을 보장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며 "이같은 뒷받침은 정부가 해줘야하는 것인데 일의 순서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각에서 이번 합의를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과 비교하는 데 대해서도 "바세나르 협약의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고용안정성을 모두 만족시키는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를 제도화한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아무런 실효성 없는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하며 1년도 못돼 유야무야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82년 체결된 바세나르 협약은 1970년대 말부터 두 차례의 오일쇼크, 과도한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재정적자, 심각한 노사갈등의 영향으로 휘청거려던 네덜란드의 위기극복 모델이다. 이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대표모델로 자리매김해 아일랜드 등이 벤치마킹했다.
 
반면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구직자 입자에서는 일단 고용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회전체적으로 볼 때, 극단적으로 말해 월급의 반을 깎더라도 채용인력을 늘리는 게 더 좋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합의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네덜란드 등 이른바 '강소국'들은 인구나 기업 숫자가 한국에 비해 훨씬 적다"며 "우리나라는 인구가 5000만에 육박하는 만큼 '협상비용'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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