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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세 번이나 잔인했던 강기훈씨 재심사건
2015-05-26 06:00:00 2015-06-11 12:07:05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기훈씨가 억울함을 풀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죄로 구속되고 재판을 받은 지 24년. 인생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그는 범죄자로 살았다. 그런 그가 드디어 명예를 회복했다. 반가운 소식이다. 대법원에서 타인의 자살을 도왔다는 혐의에 대하여 무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래도 무고한 자를 구제해 주는 사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된 것 같아 다행스럽다. 비록 무죄판결이 그의 명예만 회복시켜 줄 뿐, 하나뿐인 그의 인생을 회복시켜 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법률상 무죄판결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나는 기쁘지 않다. 오히려 슬프고 화가 난다. 재심과정에서 잔인한 사법구조를, 반성하지 못하는 법조인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판사와 검사들의 시민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무감각, 자신의 잘못을 사과조차 하지 않는 파렴치함, 자신의 잘못에서 배우지 못하는 오만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판사와 검사들이 보여준 자유와 인권에 대한 무감각은 나를 슬프게 한다. 강기훈씨의 재심사건은 다른 어떤 사건보다 빨리 진행되었어야 했다. 애초 기소될 때부터 의문이 있었고 2007년에 진상이 밝혀졌다. 200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허위감정을 했다는 사실, 강기훈씨의 필적과 김기설씨의 유서 필적이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장 중요한 증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 결과가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는 것은 신속한 재판으로 강기훈씨의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심개시 결정은 2012년, 재심무죄 판결은 올해 내려졌다. 진실이 밝혀진 후 무려 8년이 지났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재심개시결정과 재심무죄판결에 대해 매번 상고를 했다. 사건의 확정을 막은 것이다. 무고한 자를 처벌할 때에는 1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무고한 자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데 무려 8년이 걸렸다. 시민의 인권과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확정판결에 합리적 의심이 발견되면 법원과 검찰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법원과 검찰은 신속한 재판을 하기는커녕 권리 구제를 지연시켰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법조인들의 무감각이 무섭기까지 하다.
 
이번 사건에서 판사와 검사들은 강기훈씨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질러 놓고 사과하지 않는 법조인들의 파렴치함은 나를 슬프게 한다. 길거리에서 실수로 어깨를 부딪혀도 사과하는 것이 예의다. 굳이 자신에게 잘못이 없어도 상대방에게 폐를 끼쳤다면 사과하는 것이 교양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검사와 판사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잘못된 증거로 기소를 하고 법원이 재심을 시작하려고 하자 이를 막았던 검찰의 파렴치함은 잔인하기까지 하다. 오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판사들의 뻔뻔함은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말을 무색케 한다.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면 그에 걸맞게 인권을 소중하게 여기고 시민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법조인들에게는 겸손함을 찾아볼 수 없다. 사과를 한다고 대법원이나 검찰의 명예와 권위가 훼손되고 시민의 신뢰가 떨어질까? 오판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법원과 검찰의 태도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일본 정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번 사건에서 재발방지책을 강구하지 않는 법원과 검찰의 오만함은 슬픔을 넘어 절망감을 준다.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전문가들은 잘못에서 배우는 존재이다. 더구나 판사와 검사는 사람의 생명까지 좌우하는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더욱더 잘못에서 배워야 한다. 명백한 사건은 따로 검토할 필요가 없다. 명백한 사건은 초등학생들도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애매한 사건이다. 애매한 사건에서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법조인들은 훈련을 한다.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고 진실의 목소리에 가슴을 열고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강기훈씨에게 무죄가 선고되자마자 법원과 검찰은 재심연구회를 조직하든지, 재심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야 했다. 무엇때문에 진실을 보지못하고 오류에 빠졌는지, 그것이 조작인지 아니면 재판 자체의 문제인지 등을 심도있게 검토했어야 한다. 과거의 잘못에서 배우지 못하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
 
모든 법조인들이 무감각하고 파렴치하며 오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강기훈씨 사건에서 보여준 최고 법관들과 고위직 검사들의 태도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로 대표되는 법원과 검찰은 자신들이 왜 비판을 받는지 이해 못할 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의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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