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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보수가 죽어간다
2015-11-17 11:18:49 2015-11-17 11:18:49
◇이상동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지키느냐, 뚫느냐의 혈전이었다. 최루액과 물대포, 쇠파이프와 벽돌이 난무할 뿐 일체의 대화와 타협은 없었다. 지난 14일 서울광장에서 있었던 민중총궐기에 대한 여야의 논쟁도 서로를 공격하는 도구만 안 보일 뿐 마찬가지다.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에 대해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미국에서는 경찰이 시민을 쏴서 죽어도 80~90%는 정당하다”며 총기 사용을 허용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모 정치평론가는 방송에서 경찰의 저지선이 뚫리면 군대를 동원한 위수령을 발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 사태를 불러온 근본적 원인에 대한 납득할 만한 진단은 없고,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에 오버랩시켜 극단적 대처방안만 난무한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30년 전으로 되돌린 느낌이다.
 
고사 직전에 빠진 진보와 수구로 퇴행하는 보수에 대해 짚지 않고서는 이 같은 현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와 보수의 정의에 대한 해묵은 논쟁은 차치하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서 볼 수 있었던 합리적 보수, 개혁적 보수가 깊은 동면상태에 빠졌다.
 
보수와 진보는 마차를 끄는 두 마리 말이다. 마차엔 국민이 있고 정치인은 마부다.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두 마리 말이 함께 뛰어 제 속도를 낼 때뿐이다. 그런데 마부가 말을 살찌우고 항상 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몫만 챙기니 말들이 시름시름 앓고 급기야 죽음을 목전에 두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누리당은 보수를 대표하는 집권여당이다. 김무성 대표는 정통 보수를, 유승민 전 원내대표도 이보다 개혁적인 합리적 보수를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인지는 안 보인다. 일단 보수를 살리자. 그래야 진보가 살고 마차를 끌 수 있다. 나는 방법론적으로 베이컨이 말한 4대 우상을 버릴 것을 제안한다.
 
첫째, 종족의 우상이다. 집단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고 사고수준에 머물 때 변화는 기대할 수 없다. 자기중심적 실천과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국정을 챙기고 싶지만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은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민심을 제대로 읽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야당을 협력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야말로 집권여당의 몫이다.
 
둘째, 동굴의 우상이다. 국민의 의식수준, 문화와 환경은 엄청난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동굴에 갇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인지하지 못하면 생명은 끝이다. 계파와 파벌, 공천, 현재권력 모두 동굴에 불과하다. 동굴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면 더 이상의 전파를 막기 위해 국민들이 동굴을 무너뜨린다.
 
셋째, 시장의 우상이다. 이번 집회에서도 여지없이 종북이란 말이 나왔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며 합의다. 자동차나 휴대폰은 대부분 동일한 의미로 인식하지만 범주로 정의되는 언어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종북은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세력이지만 어느 범위까지 종북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선량한 국민, 합리적 진보세력까지 종북세력으로 매도되면 모두를 잃는다.
 
넷째, 극장의 우상이다. 권위에 제압돼 주장이나 대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을 모시고 뜻을 따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국민의 행복이라는 목적 하에선 그조차 수단이다. 대통령의 눈에서 발사되는 증오에 자신의 눈이 멀 것을 염려해 눈을 보지 않고 눈치를 보는 아둔한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대통령의 눈을 볼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대통령의 눈을 가려라. 안 보이면 국민을 향한 귀가 커지고, 종국에는 듣게 된다. 경청은 소통의 시작이며, 이것이 대통령을 보필하는 방법이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치킨게임의 상대가 아니다. 상생과 경쟁 속에 존재가치가 있다. 보수와 진보를 살리기 위해 4대 우상을 떨쳐내는 것부터 시작하라.

이상동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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